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초등학생 2~3학년쯤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극장에 갔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을 영화화 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 영화를 보러 갔다. TV가 귀한 시절이었고, 월드컵은 지금처럼 중계도 하지 않은 때여서 잉글랜드 월드컵이 끝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나 영화로나마 볼 수 있었다. 

극장은 만원이었다. 1시간 반 정도 상영된 월드컵 영화는 충격 그 자체였다. 북한이 8강에 오른 경기를 생생하게 영상으로 볼 수 있었고, 당대 최고의 스타 포르투갈의 영웅 에우제비우를 만날 수 있었다. 세계적인 축구의 명당 웸블리구장에서 벌어진 잉글랜드와 서독의 결승전은 최고의 명승부였다. 영화를 보면서 얻은 잔상은 그 이후 축구와 관련된 일상적인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후 4년마다 월드컵 대회가 열릴 때면 흥분과 설렘으로 일희일비하며 밤잠을 설랬다. 아마도 극장에서 만난 월드컵과의 첫 인연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리라. 1970년 멕시코 월드컵, 1974년 서독 월드컵,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은 한국이 출전을 하지 못했지만 각 경기 스코어와 세계적인 스타들의 골을 터뜨리는 멋진 장면을 챙겨 보면서 즐겼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는 단순한 축구팬에서, 스포츠기자로 신분이 바뀌면서 기사거리를 만드는 생산자의 입장에서 경기를 지켜보았다. 단순하게 월드컵을 감상하기보다는, 선수들 개인들의 플레이에 주목하면서 좀 더 깊숙이 많은 것을 담아내서 기사를 써야 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오른 한국은 멕시코 월드컵에서 비록 염원인 ‘첫 승’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박창선의 월드컵 첫 골, 최순호, 김종부의 골 등으로 의미있는 경기를 가졌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1994년 미국 월드컵,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연속 출전하면서 한국의 목표는 간절한 1승이었다. 본선에 빠짐없이 참가했지만 상대팀들은 결코 만만치 않아 한국의 희생물이 되지 않았다.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의 탁월한 리더십과 붉은 악마의 열화같은 응원에 힘입어 본선 첫 승리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승승장구, 16강, 8강을 거쳐 4강고지에 오르는 믿기 어려운 성과를 올렸다.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예선탈락했던 한국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해외월드컵에서 처음으로 16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2002 한·일 월드컵 영웅 홍명보 감독이 지휘봉을 맡았으나 아쉽게도 예선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오는 14일부터 열리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국민들의 관심은 한국이 어느 정도의 성적을 올릴까 여부일 것이다. 예선탈락할까, 아니면 16강에 오를 수 있을까 벌써부터 성급한 예상을 하는 얘기들이 언론과 인터넷을 장식하고 있다. 지역에서 어렵게 본선에 턱걸이 한 한국은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상당한 고전이 예상되기는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전력은 우리나라 축구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기도 하다.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승리에 애타게 갈구하는 팬, 썰렁한 프로축구 경기장, 해외로만 눈을 돌리는 선수들. 팬, 선수, 축구 시장 등 어느 것 하나 본질적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할 만한 요소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1일 전주에서 벌어진 러시아 월드컵 출정식에서 본선 티켓도 확보하지 못한 보스니아에게 1-3으로 패배하면서 선수들의 사기는 더 떨어진 느낌이다. 하지만 본선에서 싸워야 하는 우리 선수들이 좌절하지 말고 매 경기 최선을 다해 불같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혹시 누가 아는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공은 둥글다’는 축구의 섭리가 우리에게도 통할지 말이다. 60대 초로의 나이가 됐지만 늦은 밤 한국 축구를 보면서 월드컵의 ‘동심’으로 돌아가 재미를 다시 흠뻑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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