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시민주권 홍보기획위원장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설과 천안함 사건 희생자 유족 비하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가 17일 문제의 특강 전문을 공개했다.

경찰청 대변인실은 17일 오전 11시 34분 홈페이지의 공지사항란에 “일부 언론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지난 3.31자 경찰청장 후보자의 강연 전문입니다. 강연 내용 중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 어떤 맥락에서 연유되었고, 전체 요지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리기 위해 게재합니다”라는 안내게시문과 함께 특강 전문을 첨부파일로 올려놓았다.

특강 전문은 불과 하루 만에 1만여 명이 조회하는 등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경찰이 특강 발언 전문을 홈페이지에 과감하게 올린 것은 문제가 된 일부 대목에서 오해의 소지는 있어도 전체적인 맥락으로 볼 때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내부적 판단이 작용해서였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도 특강 전문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1시간 8분 6초 분량의 동영상에서 조 내정자는 이전 집회시위 대응방식 평가와 언론에 대한 입장, G20 정상회의 등 향후 집회 대응 방침 등을 자세히 얘기하고 있다. 문제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법질서 파괴세력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사례로 등장했고, 천안함 유족 관련 발언은 언론의 속성을 설명하고 자신의 언론관을 피력하면서 등장한다.

문제의 부분만을 따로 떼어놓고 볼 때보다 전후맥락을 살펴가며 다시 읽어보니 경찰의 해명대로 법질서 유지를 강조하고자 한 그의 발언 취지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미 쟁점화한 문제의 발언보다 ‘법과 민주주의’ ‘언론관’ ‘경찰의 역할’ 등에 대한 조 내정자의 인식이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을 살펴보자.

“우리(경찰)가 얼마나 우수합니까. 미국 경찰보다. 그런데도 왜 우리 경찰이 미국 경찰보다 한참 못한 것처럼 욕 들어 먹습니까? 그것은 언론, 정치인, 그 다음 판사들 잘못된 판결과 결정 또 국민정서 이런 게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한국 경찰이 미국 경찰보다 공복의식도 빼어나고 불법 시위 진압 능력도 훌륭한데다 흉악범도 잘 잡는데 걸핏하면 욕을 먹는 이유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이다. 경찰은 잘못한 게 없는데도 언론의 선정적 보도와 정치인들의 매도, 그리고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이 주 원인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인식이다.

조 내정자는 외무고시 출신 특채자여서 경찰내부에서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한 인식이 높은 편으로 짐작된다. 그런데도 민주사회에서의 경찰의 책분과 위상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라니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미국 경찰이 불법시위에 대한 엄정한 대응과 흉악범에 대한 총기사용 등에서 한국 경찰과 비교해서 과격한 부분은 있다. 하지만 이는 미국에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상대적으로 더 잘 보장돼 있는데다 총기소유가 자유화돼있는 사회적 차이 때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 내정자는 이어 “우리 대한민국 경찰은 어떻습니까. 인권 마인드도 있고, 사명감도 있습니다. (중략)경찰이 진정한 민주투사입니다. 우리 경찰이야말로 민주주의 수호의 최선봉에 서 있는 겁니다”라며 역시 한국 경찰이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고 있다.

그렇지만 조 내정자가 서울경찰청장에 부임하며 실적주의를 도입하는 바람에 양천서 고문사건 등이 터져나왔음을 모두가 일고 있다. 오죽하면 한 경찰서장이 조 내정자의 실적주의가 고문사건의 근본적 원인이라며 항명사태를 일으켰겠는가. 군사독재시절에나 들어봤음직한 ‘고문경찰’이란 용어가 언론에 다시 등장한 것이 최근의 일인데 ‘인권마인드가 있다’고 자화자찬하는 그의 강심장에 등골이 오싹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런 전근대적 시각을 갖고 있는 그의 경찰청장 내정을 철회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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