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순교 - 김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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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김남조(1927~  )

 

하느님께서
순교 현장의 순교자들을 보시다가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셨다
나를 모른다고 해라
고통을 못 참겠다고 해라
살고 싶다고 해라

나의 고통이 부족했다면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겠다고 해라

 

[시평]

순교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됐다. 신라의 이차돈(異次頓)에서부터 오랜 순교의 역사를 지녔다. 종교는 어느 의미에서 그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의 신념체계의 표현이다. 그래서 새로운 종교가 들어온다는 것은 지금까지 신봉하며 살아오던 신념체계와는 다른 그런 모습의 신념이 우리의 삶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이질적인 신념체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지어는 그 새로 들어오는 종교를 탄압하게 된다.

탄압을 하는 사람이나, 탄압을 받는 사람이나 모두 자신의 신념체계를 앞세우고 서로 대립을 한다. 그래서 목숨이 좌우되는 고문 속에서도 결코 그 신념체계를 버리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에 서학(西學)이 처음 들어오던 때, 서학을 믿는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순교를 하면, 천당에 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어제 입교를 한 14살 어린 소녀가 오늘 체포가 되어 심문을 받을 때, 서학(西學)을 신봉하지 않는다고 부인을 하면 살려준다는 관원의 회유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죽음을 택했다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장엄한 순교를, 그 아무 것도 모르는 14세 소녀가 택한 것이다.

이를 순교라고 해야 할는지, 무지라고 할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느님이 보시다가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시며, 나를 모른다고 해라, 고통을 못 참겠다고 해라’라고 소리치시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고통이 부족했다면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겠다’라고 마음으로 우셨을 것이다. 어쩌면 종교는, 진정한 신앙은 하느님의 이러한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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