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 중에 인격 장애가 유난히 많다. 분노를 참지 못해 불같이 화를 내거나 별 것 아닌 것 가지고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그렇지만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제 하고 싶은 대로 내질러버리는 몰염치 역시 인격 장애의 소산이다.

왜 하필 이 대한민국에 인격 장애자가 많을까. 우리 조상들은 어울려 춤추고 놀기 좋아할 뿐 아니라 힘을 합쳐 농사일도 하고 이웃의 어려움을 못 본 체 하지 않는, 낙천적이고 온순하며 정 많고 협동심 강한 민족이라는 게 역사의 증언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의 인격 장애는 유전자 탓이 아니라 사회 환경 때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격 장애는 주로 청소년기와 조기 성인기에 발생하기 쉬운데, 안타깝게도 학교에 인격 장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학교에서 정의와 평등,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 같은 지순한 가치를 배워야 하나, 불의와 불평등, 상대에 대한 폄훼와 무시 같은 위악적인 것들을 확실하게 배울 수 있는 곳 역시 학교다.

인격은 제쳐두고 공부만 잘 하면 그만이라는 성적지상주의, 부당한 줄 알면서도 견뎌내야만 하는 과도한 매질과 폭력, 평생 씻을 수 없는 모욕적인 언사,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치맛바람 등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하고 합리적이지 못한지, 학교가 가르쳐준다.

‘학교괴담’이라는 소설과 영화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비록 그것이 허구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절대 공감으로 열광하는 것은, 학교에서 빚어지는 잔인한 진실들에 대한 생생한 공감과 분노의 표출에 다름 아니다.
‘까라면 깐다’는, 무엇을 왜 어떻게 까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까라면 까야만’ 하는 어느 곳에서, 학교에서 학습한 부당한 가치들을 총정리하게 된다. ‘계급이 깡패’라 하여 개인의 인격 따위를 추스르고 빛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그곳에서 인격은 치명적으로 장애를 겪게 되는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취직이라도 하여 사회에 나와 보면, 상사라는 인간들이 필시 군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군기 운운하며 후임의 기강을 잡겠다고 나오는 걸 보면서, 장애를 겪은 인격은 다시 또 장애를 겪는다. 군대도 안 갔다 온 여자 상사가 ‘군기 빠졌다’고 닦달하게 되면, ‘완전 어이없어’진다. 부당한 줄 알면서도 여전히 ‘까라면 까야’ 하는 조직에서, 인격은 마침내 장애의 초절정으로 치닫는다.

먹고 살려면 별 수 없다 싶어 장애를 겪고 있는 인격일지언정 추스르고 달래 외줄타기 하는 심정으로 견뎌내 보지만 분통 터지는 일들이 쉼 없이 터지는 바람에 인격 장애가 속절 없이 드러나 구설수에 오르거나 생업에 치명상을 입기도 한다.

제대로 정신 박힌 인간이라면 당연하게 분노할 줄 알아야 하는, 공분(公憤)의 빌미가 있으면 그나마 장애 입은 인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도 큰 해는 없다. 남들 다 괜찮은데 저 혼자 화내고 씩씩거리면 인격 장애라고 손가락질 받지만 다 같이 화내는 일에 동참하는 것은 하등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새로 큰 벼슬자리에 오르는 사람들이 위장전입을 밥 먹듯 하고 그럼에도 눈곱만큼의 부끄러움도 없이 아이들 공부시키려고 한 걸 가지고 뭘, 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서 공분하지 않을 수 없고, 이 때 인격 장애자가 마음껏 화를 내도 흉이 되지 않는다.

별 일 아닌 것에도 지나치게 신경을 쓰느라 자신을 괴롭히는 노이로제 환자는 신발속의 돌(A Stone in the Shoes)이라고 한다. 신발 속에 돌이 있으니 얼마나 불편하고 아플까만, 남에게 해가 되지는 않는다. 대신 인격 장애는,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남들은 엄청 불편하고 괴롭게 하는 마늘냄새에 빗대 마늘애호가(Lover of Garlic)라고 한다.

지금 멀쩡한 인격, 장애 입은 인격 가리지 않고 공분하게 만드는 마늘 애호가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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