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과 통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다. 이는 거리를 단축시키고, 삶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나날이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서 발전은 거듭되고 있다. 과거에도 교통과 통신은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와 관련해 옛 선조들이 누린 교통과 통신 문화는 어땠는지 알아봤다.

1920년  한강변  서빙고(西氷庫)  일대의  풍경  사진.  저  멀리  기차가  지나는  곳에  제천정(濟川亭)  터널의  모습이  보인다(출처: 서울역사박물관)
1920년 한강변 서빙고(西氷庫) 일대의 풍경 사진. 저 멀리 기차가 지나는 곳에 제천정(濟川亭) 터널의 모습이 보인다(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쇠로 만든 말’ 철마라 불러
서울서 인천, 1시간으로 단축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화륜거의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차의 굴뚝 연기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라. 차창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움직이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다.’

1899년 9월 19일자 독립신문에 실린 글이다. ‘화륜거’는 기차의 옛말이다.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건설된 서울 노량진~인천 제물포 간의 ‘경인선’을 처음 본 사람들은 ‘쇠로 만든 말이 달린다’며 놀라워했다. 그래서 기차를 ‘철마’라고도 불렀다.

◆전국, 철도로 연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대한제국은 세계와 본격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특히 경인철도는 한성과 인천까지 1시간에 주파할 수 있어 일일 생활권으로 묶이게 됐다. 원래 1896년 미국인 제임스 모스가 경인철도 부설권을 획득했었다. 하지만 자금부족으로 공사를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고 일본인이 세운 경인철도합자회사에 넘겨졌다.

이후 경인철도합자회사에서 공사를 시작해 1899년 9월 18일 제물포에서 노량진까지 33.2㎞의 구간을 임시로 개통했다. 이듬해 한강철교 완공 후에 정식 개통했다.

실제로 1900년 11월 12일, 새로 지은 서대문역에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서대문에서 제물포에 이르는 총연장 36㎞의 경인철도 개통식이 치러졌다. 경인선 철도에 이어 1905년에는 남대문에서 부산까지 총연장 445㎞인 경부선이 개통됐다.

◆철도 건설 속 뼈아픈 역사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사용하는 대부분의 간선철도는 일본의 정책 자본기술에 의해 부설되고 운영된 데서 연유한 아픔을 담고 있었다. 1899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철도는 일본의 침략·지배·개발·수탈·억압 등의 색채가 농후하게 배어 있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일본은 통감부 안에 철도관리국을 설치하고 경인·경부·마산선 등을 직접 장악하기 시작했다. 국권이 일본에 넘어간 후에는 철도관리국이 조선총독부 내 철도국으로 이관됐다. 이와 함께 일본은 식민지 경제적 착취를 위한 철도망 확장에 나섰다.

1914년에는 호남선, 1928년 함경선이 생기면서 한반도에 X자형 간선철도망이 완성됐다. 1937년에는 혜산선, 1939년에는 평원선과 만포선이 완공됐다. 해방 이전까지 조선총독부가 수탈을 위해 건설한 철도는 총 6362㎞나 됐다.

1920년대 경부철도의 객실 내부를 볼 수 있는 사진(출처: 서울역사박물관)
1920년대 경부철도의 객실 내부를 볼 수 있는 사진(출처: 서울역사박물관)

1945년 광복이 될 때까지 한반도의 주된 교통수단은 철도였다. 철도에 의해 사람과 물자의 대종이 수송됐다. 만주와 중국, 러시아, 유럽과도 연결됐다. 당시에는 민간인이 경영하는 사설철도도 있었다. 동대문에서뚝섬·광나루를 연결하는 경성궤도, 성동역에서 춘천을 연결하는 경춘선, 성동역에서 금강산을 연결하는 금강산철도 등이 이에 속했다.

하지만 철도 건설에는 많은 민간의 희생이 수반됐다. 수많은 민간인의 땅이 헐값으로 매점·수탈됐고 엄청난 노동력이 동원된 것이었다.

◆광복 후 철도 발달

철도는 그간 일제의 대륙침탈을 위한 군사적 병참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자체적 발전이 정체된 상태였으나, 광복을 맞아 자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맞았다.

하지만 열악한 시설환경과 운영기술부족 등의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광복 당시의 열차 운행상태는 1945년 9월 28일 서울~인천 간에 1개의 노선 열차만 겨우 운행됐고 그 외는 전무한 상태였다. 이 무렵 미군정청 교통국이 발족했고 38선 이남 철도행정을 담당했다. 이듬해 남한 소재 사설철도와 부대사업일체를 국유화했다.

전쟁 중 철도는 전시수송체제로 바뀌었으며 국제연합(UN)군 산하로 넘어갔다. 그러다 1955년 6월 UN군이 가져간 철도 운영권이 한국정부로 이관되면서 본격적인 한국철도 시대를 맞게 됐다. 1962년 1월에는 철도법이 시행되면서 안정적인 철도 발전의 기틀이 다져지고 이듬해 철도청이 발족됐다. 1983년 무궁화호 제작을 시작으로 새마을호 등 열차가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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