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다툼과 분쟁과 전쟁으로 아비규환이면서도 한쪽에선 평화를 외치고 있으니 역설이다. 또 한 손에는 총과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평화를 든 모순의 연속이다. 정의와 평화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켜 사람을 죽이는 아이러니다. 그야말로 전쟁과 평화가 어우러진 이해하기 쉽지 않은 혼돈의 세계에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국의 정치적 계산과 자신의 명예와 자신이 속한 단체의 노선을 관철시키기 위해 평화라는 이름은 볼모로 잡혀 이리저리 고생하고 있다. 사람과 나라의 복잡하고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서 과연 지구촌의 평화가 이루어질까. 아니면 사람의 명예와 욕심으로 평화를 이루어낼까. 참으로 작금의 현실은 의문투성이다.

한반도, 이 한반도는 시대적 사명을 가진 숙명의 땅이다. 지구촌 혼돈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마지막 보루로 남아 있는 신의 땅이다. 그럼에도 사람의 힘으로 평화를 이뤄보겠다는 노력은 가히 가상할 정도다.

이제는 말할 때가 된 것 같다. 먼저 밝힐 것은 평화는 사람의 계산과 정치와 외교와 군사적 방법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게 애초에 아니었다. 왜일까. 평화는 신의 섭리 가운데 신의 방법으로 신이 택한 사람과 민족에 의해 이뤄지는 신의 역사다. 평화는 일반 사람의 관계와 세상의 영역에 있지 아니하다는 얘기며, 오직 종교와 신의 영역에 해당할 뿐이다. 즉 ‘종교와 평화’의 관계다.

세계사이면서도 종교사이기도 한 지난 역사를 통해 이 시대를 분별해 보자. 우주의 일주해가 시작되던 약 3600년 전, 당시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 곧 애굽 땅에서 구출해내기 위해(출애굽 사건) 모세라는 선지자를 등장시켰다. 그리고 애굽과 주변의 정치적 상황과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자연재해를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게 된다. 물론 즉흥적으로 있어진 일도 아니며,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이루는 일이었다(창 15장). 당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정치적 상황과 자연재해에만 관심을 갖고 온통 취해 있었지만, 그같이 복잡한 정치상황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이뤄갔으니 바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빼내는 출애굽 내지 선민 구원의 역사였다.

또 있다.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우여곡절 끝에 약속의 땅이라고 하는 가나안에 입성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솔로몬 왕은 무한한 지혜를 받았으나 부패해 이방신을 섬기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게 된다(왕상 11장). 이로 인해 오늘날 우리나라와 같이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리게 되고,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다. 이 남유다의 멸망에 대해 미리 구약의 선지자(이사야·예레미야·다니엘·스가랴)들을 통해 예언하고, 그 예언대로 70년이 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종교의 역사를 발견하게 되니, 이 또한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는 선민 구원사다.

이 역사 또한 예사롭지 않다. 당시 중동과 팔레스타인의 정세 가운데,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사로잡힌 지 70년 만에 바벨론은 신흥제국인 바사(페르시아, 오늘날 이란)에 의해 멸망당한다. 이때 바사 왕 고레스에 의한 칙령이 선포되고, 내용인즉, 모든 민족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살 것을 명하게 되니,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사로잡힌 지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는 역사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약 2000년 전 이스라엘의 정치상황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은 앗수르, 바벨론, 메대 바사, 헬라 다음으로 출현한 로마제국의 식민지배와 함께 정치적 종교적으로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초림의 예수님 탄생과 삶과 고난을 엮어갔다. 이는 주지하는 바대로 구약 선지자들에게 예언한 그 예언을 이루어가는 노정이었음을 그 시대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오늘날이라고 어찌 다르겠는가. 서기동래라 하듯, 오늘날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이 한반도에서 하늘이 정한 한 사람을 통해 그 마지막 행보 즉, 한반도에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종교적으로 복잡한 상황을 만들며, 신의 궁극적 뜻인 평화의 대업이 그 이면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다면 얼마나 믿을까. 믿지 못하겠거든 있어지는 평화의 일을 보고라도 믿어야만 한다. 꼭 그래야만 한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인류의 역사 곧 세계사 속에 종교의 역사가 있는 게 아니다. 신의 뜻 가운데 운행되는 섭리 곧 종교의 역사 가운데 세계사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의 때는 모세로부터 시작된 우주의 일주해가 도래했으니, 지난 갑자년(1984년)이며, 송구영신 호시절 만물고대 신천운 즉, 엄중한 새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는 게 진리며, 오직 위력이 아닌 도의의 시대가 왔으니 곧 평화의 새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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