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기호·수학 등 기존 문학 틀서 벗어나다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작가 이상(김해경, 1910~1937)은 신비스러운 인물로 사람들에게 남았다. 그가 쓴 작품들을 보노라면 표현부터 해석까지 독특하다는 점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일생, 가족관계, 이상이 필명인 이유 등이 근 100년간 묘연했으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이상은 한일강제병합이 되기 9일 전인 1910년 8월 20일에 태어났다. 그의 전반적인 삶이 암울한 시기와도 맞물린 셈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다른 작가들처럼 시대상을 드러내놓고 반영하기보다 자기중심적인, 즉 고뇌하는 자아를 내보였다. 박태원과 같이 모더니즘 생활을 추구했던 그는 당시 조선일보에서 <오감도>를 연재하지만 독자들이 난해하다고 항의, 결국 15회로 그쳤다.

예술적 성향이 짙은 그는 화가가 되기를 바랐으나, 조선총독부 상공과 기술관에 있던 백부는 이상이 건축으로 나가길 소원했다. 숙부의 뜻에 따라 그는 경성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경성고공 건축과를 나온 후 조선총독부 건축기수가 됐다. 이상이 <삼차각 설계도> <건축 무한 육면각체> 등 건축과 관련된 작품을 쓰게 된 연유도 건축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상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이룬다. 19세기를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반(反) 전통주의자라는 말이 있는가 반면, 그의 천재성을 극대화 시켜 작품마다 극찬을 쏟아내는 평이 있다. 이상은 결코 대중적이지 않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실험적 작품을 선보였다.

이상은 건축의 길을 걷다 돌연 폐병을 얻었다. 사람이 깊이 아플 때 자신을 돌아보듯 그는 자신을 위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날개>에서 보듯 허약한 청년과 기생은 이상과 기생 금홍을 그대로 투영했다. 3년간 동거한 금홍이 이상을 배신했으나 그를 잡지도 나무라지도 않은 이상이다. 단지 “날자, 한 번만 더”라며 과거의 나에서 새로운 나로 탈바꿈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짧은 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그는 1936년 폐결핵을 치료할 목적으로 현해탄을 건너 도쿄로 간다. 그곳에서 반일조선인이라는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돼 40여 일 동안 옥살이를 한다. 그러다 병보석으로 푸려 도쿄대 부속병원에 입원했으나 1937년에 생을 마감한다.

그는 죽기 직전 부인 변동림에게 “멜론이 먹고 싶소”라는 말을 남겼다. 변동림(필명 김향안)은 훗날 “그는 가장 천재적인 황홀한 일생을 마쳤다. 그가 살다간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되는 충분한 시간이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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