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현대사회가 도시화되고 물질문명을 더욱 중시하는 경제만능시대로 접어들면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심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인관계에서 혈연이나 특별히 친밀한 관계가 아닌 이상, 우리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인간관계는 상대방이 갖고 있는 사회적 위신이나 인간적 신뢰보다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권력적 능력이나 재물의 다과(多寡)에 척도를 맞추는 세상이 됐다. 돈과 권력이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되고 있으니 사회가 각박하고 인간미가 퇴색된 사람들 사이에서 믿음이 엷어지는 현상을 보인다. 이러한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되는 불신의 결과라 하겠다. 

정부에서는 공무원행동강령을 개정해 시행중이다. 공무원이 갑질행위를 못하도록 여러 가지를 조치했다고는 하나 이해되지 않는 내용도 포함돼 있는바 ‘직무관련자로서 퇴직한 지 2년 이내의 퇴직자와 사적 접촉시 신고 의무’다. 이 내용은 함께 근무하다가 퇴직한 선배나 동료와 사적인 일로 만날 경우에 해당 공무원은 미리 신고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어길 경우에는 징계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공직사회에서 옛 동료나 상사와의 인간관계를 불신시키는 이 제도가 꼭 필요하고 정말 바람직한 것인지조차 의문이 든다. 공무원의 행동강령에서부터 우리 사회를 불신으로 흐르게 하는 요소가 담겨져 있으니 자괴감이 들 정도다.

우리 사회에서 신뢰가 엷어진 그 자리에 불신이 크게 자리한 데에는 정치적 지도자들의 이중성도 크게 한몫을 해왔다. 정치지도자들이 자신의 입장, 자기 정당의 논리만 앞세우고서 상대방에게 귀 기울이지 아니하니 타협이 될 리가 없다. 현재의 정치가, 의회 상황이 협상 내지 합의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불신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장기간 실종되고 있는 대화정치, 참다운 의회정치의 책임을 여야가 서로 상대방에게 돌리며 비방하고 있으니 이러한 꼴불견 현상은 ‘누워서 침뱉기’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인간적 신뢰가 무너진 바탕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으랴. 정치계부터 먼저 무너진 상호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의회 운영에서는 대화정치, 타협정치가 우선이다 보니 무엇보다 상대당을 존중해주는 것이 기본이요, 예의인 것이다. 나라의 발전과 국민 평안을 위해 존재한다는 정치에서 정치인들이 이 기본마저 뭉개려한다면 평가가 어떻게 날 것인지가 궁금하다. 과연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정치인인지, 아니면 자기주장만 되풀이 하며 억지를 펴는 패거리 집단인지 분간이 묘연하기만 하다. 정치인들부터 신뢰회복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은 공직선거를 통해 지역을 발전시키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겠다고 수 없이 약속했을 것이다. 또한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선량(選良)들은 임기 초에 국회법  24조에 따라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내용으로 선서했을 것이다. 그러니 선서의 내용대로 성실히 실천에 옮겨 스스로 증명시켜야만이 비로소 국민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믿음 없이는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본보기로 삼아야 하겠지만 특히 정치인들이 귀감을 삼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경구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전해지는 고사성어가 있으니 바로 사목지신(徙木之信)이다. 이목지신(移木之信)의 고사와도 함께 사용되는 이 말은 한자대로 풀이해보면 ‘나무를 옮기는 믿음’이다. 쉽게 이해가 안 되지만 여기에 얽혀진 고사가 중국의 사기 상군열전(商君列傳)에 나온다. 상군의 성은 공손(公孫)이고 이름은 앙(鞅)인데. 전국시대 진나라의 명재상으로 상앙으로 부른다.

상앙은 법제 개혁을 단행했으나 백성이 따라줄 것인지, 법적 효과를 고민하다가 이 제도에 대해 백성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주기 위한 묘수를 생각해냈으니 나무와 관련된 일화이다. 진나라 수도인 함양(지금의 ‘시안 西安’ 부근) 도성 남문 앞 상가에 길이 약 9m의 굵은 통나무를 세워놓고 이 나무를 반대편 북문까지 옮기는 사람에게 십전(十錢)을 주겠다는 방문을 붙였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백성이 믿지 못한 결과였다. 그러자 상앙은 오십전의 포상을 걸어 다시 방을 내걸었고 긴가민가하던 백성이 나무를 옮기자 행인이 보는 가운데 포상을 했다. 그 소식이 입소문을 통해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자 상앙은 법제개혁을 단행해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한 내력으로 사목지신은 ‘약속을 지켜서 신뢰를 얻는다’는 뜻이니 국민의 신뢰가 중요함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보수-진보 간 이념 갈등이 팽배하고, 건전사회를 튼튼히 지탱해줄 신뢰가 부족하다. 이는 아무래도 정치지도자들로부터 야기된 이념 조장과 불신의 정치가 기인하는 바가 큰데, 정치권에서부터 새로워져야 한다.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이념의 갈등으로 얼룩진 불신을 걷어내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국태안민(國太安民)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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