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스님이 19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상대로 낸 ‘여성생식기 표본 보관금지’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그렇지만 혜문스님은 “표본이 폐기된 것만으로도 이미 국과수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오는 24일 경기도 남양주 봉선사에서 위령 천도재를 봉핼할 것”이라고 말했다.ⓒ천지일보(뉴스천지)
“인간의 존엄성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비록 소송에서는 졌지만 국과수를 상대로 한 조선 여성 생식기(일명 명월이 생식기) 표본 보관중지 및 파기에 대해 법원이 이례적으로 국과수를 현장검증하고 화해권고를 내렸던 것에서 이미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부장판사 임영호)는 19일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스님 등이 “여성 생식기 표본을 보관, 정신적 피해를 받았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상대로 낸 ‘여성 생식기 표본 보관금지’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날 판결 후 법원에서 만난 혜문스님은 “패소할 것을 알고 있었다”며 “그렇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당한 한 여인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마지막까지 해줄 수 있는 것을 다하고 싶었다”고 심정을 전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가 국과수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 것은 지난 1월로 혜문스님을 비롯한 원고들은 국과수에 보관중인 이 표본이 ‘반인권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보고 길고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개인이 정부 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이었지만, 일제에 의해 적출된 생식기 표본이 1955년 국과수로 넘겨진 후 많은 시간이 흐르도록 표본의 심각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도 해쳐나가야 할 난관이었다.

이에 혜문스님은 “단지 기녀라는 이유로 생식기를 적출해 ‘인체표본’으로 만드는 만행을 저지른 행위는 일제가 조선 여인들에게 안긴 씻을 수 없는 모욕이며 인간의 존엄성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야만적 행위’”라며 “식민지시기를 살아갔던 불행한 여성들에게도 인권이 있음을 망각한 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행위를 묵과했던 국가기관과 관계인들의 부작위 행위,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반인륜적 행위에 ‘사회적 경종’을 울리고자 표본 사진과 생식기 표본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명월이 그림을 공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사건의 심각성을 고려한 재판부는 지난 6월 국과수에 표본을 폐기하라는 화해권고를 내렸고 원고 측 혜문스님은 이 인체 표본을 국과수로부터 넘겨받으면 영혼을 달래주기 위한 ‘위령 천도재’를 봉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과수와 검찰이 화해권고 기간을 하루 남기고 일방적으로 용역업체에 의뢰해 표본을 ‘소각’하는 것과 동시에 검찰이 원고 측을 상대로 소를 각하해달라는 이의 신청을 하면서 ‘명월이’ 사건은 또 한 번 법정에서 맞붙게 됐다.

혜문스님 또한 이미 표본이 폐기가 됐기 때문에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서라도 다만 국가가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한 행위에 대한 관실 책임 유무에 대해 “단 1원이라도 받겠다”라는 취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고 19일 이에 대한 판결이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국가가 생식기 표본 보관을 즉시 중지하고 장례절차에 따라 폐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혜문스님 등이 생명, 신체, 재산 등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며 “표본 보관을 중지하고 폐기할 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한 위자료 청구는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한편 원고 선정 당사자 혜문스님(대한불교 조계종 승려)은 “일제의 반인륜적 행위가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해결됐고 본다”며 “국과수에 아직 남아 있는 백백교 교주의 머리도 조속한 시일 안에 파기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원고들은 현재 ‘백백교 교주 머리 표본’에 대해서도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혜문스님은 생식기 표본의 당사자인 기생 명월이의 위령 천도재를 오는 24일 10시 30분 경기도 남양주 봉선사에서 봉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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