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맞닿은  듯  한  태기산  정상에  하얀  풍력발전기가  산바람을  타고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하늘과 맞닿은 듯 한 태기산 정상에 하얀 풍력발전기가 산바람을 타고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정상부에는 해발 ‘1261m’ 비석

처음에는 덕고산이라 불리어져

‘섬강 첫 물줄기’ 역사서에 기록

1960년대에는 화전민 정착해

‘바람’ 의미 가진 식물 많이 서식

도립공원 지정 위해 주민 노력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첩첩 쌓인 산봉우리가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넘실거리는 산들 위에는 하얀 풍력발전기가 산바람을 타고 천천히 돌아갔다. 강원도 횡성군 최고봉인 ‘태기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광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뤘다. 하늘도 수채화로 그린 듯 유난히 푸르러 자연의 싱그러움을 더했다.

이곳 태기산 정상부에는 ‘해발 1261m’가 적힌 비석이 오롯이 서 있었다. 오가는 관광객은 내려다보이는 도심을 배경으로 태기산 정상에서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연실 셔터를 눌러댔다. 산 정상에서 마시는 여유 한 모금이 달고 오묘했을까. 이들의 입가에는 웃음꽃이 절로 피어났다.

정상부에는 군 시설이 위치해 있고, 2008년에 풍력발전단지가 건설돼 20기의 발전기가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지역적 특성으로 산림과 생태계도 잘 보존돼 자연유산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태기산으로 가는 도로 위. 천연의 보물을 가진 태기산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태기산으로 가는 도로 위. 천연의 보물을 가진 태기산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태기산과 태기왕 설화

태기산에는 삼한시대 말기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에 얽힌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설화에 따르면, 태기왕은 새로 일어나는 신라군에 쫓기어 이곳에 성을 쌓고 군사를 길러 신라의 대군을 맞아 크게 싸웠다.

하지만 태기왕은 항상 신라군이 쳐들어올 남쪽만 경계를 철통같이 했다. 이것은 태기왕의 크나큰 실수였다. 신라군은 염탐꾼을 풀어 이곳의 지형을 살펴보고는 남쪽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고, 반대쪽인 홍천군 서석면 생곡리 방면을 통해 공격을 감행했다.

태기왕으로서는 앉아서 뒤통수를 맞은 꼴이 돼 버리고 말았다.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신라군과 일대 접전을 벌였으나 역부족으로 참패해 남은 병사를 이끌고 서문을 통해 인근 속실리 율무산성으로 도주했다고 한다.

태기산  정상에  ‘해발  1261m’가  적힌  비석이  오롯이  서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태기산 정상에 ‘해발 1261m’가 적힌 비석이 오롯이 서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이때 패망한 진한의 군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새로운 마을을 개척해 살게 된 동네가 ‘신대리’다. 태기산 입구에는 ‘촛대바위’가 있다. 망을 보던 군사가 태기왕이 신라군의 기습 공격으로 패망하자 굳어서 촛대 모양의 바위가 됐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기록에 보면, 이 성의 둘레는 1200미터로 성안에는 샘이 있고 창고와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성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산 중턱에는 큼지막한 돌들이 태기산성터를 따라 길게 널브러져 있었다. 그 옛날 적군을 방어했을 듯한 모습이 눈앞에 절로 그려졌다.

태기산성 터.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태기산성 터.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과거에는 태기산을 ‘덕고산’이라고도 불렀다. 덕고산이 역사서에 처음 정리된 것은 ‘세종실록’ 지리서에서다. 여기서 덕고산과 덕고산성에 대해 ‘섬강은 그 원인이 횡성 덕고산에서 시작해 횡성현을 거쳐서 원주 이천·갑곶이를 지나 흥원창에 이르러 섬강이 돼, 여강(驪江: 남한강)으로 들어간다’ ‘덕고산 석성이 현의 동북쪽 49리 50보에 있다. 둘레가 5백 68보 5척이며, 한 내가 있는데 장류해 마르지 아니한다’ 등과 같이 정리돼 있다.

세종실록보다 80여년 뒤인 1530년에 완성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강원도 횡성현에서 ‘덕고산 현의 동쪽 82리, 강릉부 경계에 있다’ ‘덕고산성을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3653척이다, 안에 우물 하나가 있고, 군창이 있다, 지금은 반이나 퇴락했다’고 기록돼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와는 큰 차이가 없는 내용이다. 그간 태기산에 대한 최초의 표기를 조선 후기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에서 찾고 있었는데, 이보다 훨씬 앞서서 태기산을 덕고산이라 불러온 것이었다.

전국  제일  고지대에  있던  ‘태기분교’의  옛  모습.  태기분교  앞으로  계단식  화전이  보인다(왼쪽).  태기분교  앞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모여  있던  모습 (출처: 횡성군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전국 제일 고지대에 있던 ‘태기분교’의 옛 모습. 태기분교 앞으로 계단식 화전이 보인다(왼쪽). 태기분교 앞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모여 있던 모습 (출처: 횡성군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화전민과 하늘 아래 첫 학교 ‘태기분교’

태기산 기슭에는 고랭지 작물을 목적으로 많은 화전민이 입주했고 ‘태기리’라는 1개리가 생겼다. 이곳에는 74가구 377명의 ‘화전민(火田民)’이 살았다. 화전민은 휴경지를 새로 경작할 때 불을 놓아 야초와 잡목을 태워버리고 농경지로 사용해 생활하는 유민을 말한다. 1961년 이후 한때는 생산 증대라는 차원에서 정부가 화전을 장려하기도 했다.

이들은 밀가루를 원조받았고, 계단식 밭을 일구며 살았다. 계단식 화전에서의 재배작물은 당귀·천궁 등 약초였으며 생산물을 국가에서 수매했다.

태기분교 터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태기분교 터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그러나 산림을 방화·소각하고 그 지대를 경작하는 화전경작은 산림 황폐화의 원인이 됐으며, 1968년 ‘화전정리법’을 공표하면서 화전은 법령으로 금지됐다. 1974년부터 1976년까지 3개년에 걸쳐 화전민을 이주, 이들이 경작하던 화전지는 완전히 산림으로 복구돼 치산녹화의 성과를 가져오게 됐다.

실제로 산 중턱에서 우거진 숲을 내려다보면 화전민이 살던 곳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푸릇한 잎을 가진 나무 사이로 경제목인 잣나무가 심겨 있는데 이곳이 바로 화전민의 터다.

화전민이 마을을 이뤄 번성했을 때는 전국 제일 고지대에 ‘태기분교’가 있었다. 당시에는 산아제한이 없어 집마다 많은 자녀를 뒀다. 그 당시 작은 산골 학교라도 몇백 명의 학생이 재학했다. 하지만 화전민의 몰락으로 태기분교도 8년이라는 단명으로 숱한 사연을 뒤로한 채 폐교에 이르게 됐다. 태기분교 터에는 지금도 건물 돌이 남아있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또 이곳에 비치된 흑백사진은 수 십 년 전의 역사를 대신 알려주고 있었다.

태기산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 첩첩이 쌓인 산봉우리가 마치 그림 속 한 장면이 아름답다 (출처: 횡성군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태기산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 첩첩이 쌓인 산봉우리가 마치 그림 속 한 장면이 아름답다 (출처: 횡성군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태기산이 품은 생태계

태기산에는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식물로는 잣나무, 전나무, 가래나무, 물오리나무, 굴참나무, 가는잎쐐기풀, 피나물, 금낭화 등이 있다. 이들 식물은 대부분 습기가 많은 곳에 서식하며 잎 가장자리가 톱니모양인 형태가 많다. 특히 ‘바람’이라는 단어와 의미가 내포된 이름을 지닌 식물이 많았다. 너도바람꽃, 궹의바람꽃 등이 이에 속한다.

풍력발전단지와 접근도로 인근에서 출현된 동물은 삵·고라니·다람쥐 등 포유류와 쇄박새· 멧비둘기·동고비 등 조류, 무당개구리·두꺼비·청개구리 등 양서·파충류 등이 있다. 문헌상으로는 하늘다람쥐, 오소리, 원앙, 검은머리딱새, 큰부리까마귀 등도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 중턱에는 천연 자연폭포인 낙수대도 있다.
 

태기산이 가진 천연 폭포인 낙수대 (출처: 횡성군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태기산이 가진 천연 폭포인 낙수대 (출처: 횡성군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현재 ‘태기산 도립공원 지정’을 위해 횡성 지역 주민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횡성군 청일면 신대리 마을회(도립공원지정추진위원장 정대기)는 최근 태기산 도립공원 지정을 위한 군민 서명운동을 횡성전통시장 일대에서 진행했다. 횡성군은 지난해 9월 태기산 일대 청일면 신대리와 둔내면 태기리 지역에 22㎢ 규모로 도립공원 지정을 신청했다.

횡성군청 관계자는 “태기산에는 풍력발전소가 있고 수림도 잘 조성되고 있다. 태기분교와 태기산성도 있었다”라며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 자연을 보전하면서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지역주민의 소득창출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도움을 준다”고 덧붙였다. 
 

태기산 주변으로 다양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관광지가 조성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태기산 주변으로 다양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관광지가 조성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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