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호 변호사가 31일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31
서기호 변호사.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31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전(前) 대법원장이 재판으로 정권과 거래하려 했다는 의혹의 후폭풍이 거세다. 서기호 변호사(48, 사법연수원 29기)는 이 같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29일 “최고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며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재임용에 탈락한 서 변호사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정도를 넘어서 명백하게 헌법상 재판 독립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서 변호사는 “직권남용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권리행사방해에 해당하는 부분은 입증하기 어려워도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행위는 입증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또 “사법부 수장이었던 사람이란 이유만으로 두둔하려고 해선 안 된다”면서 “사법부의 신뢰는 무너진 지 오래다. 적당히 감추려는 태도가 사법부 신뢰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서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2차 조사 때 원세훈 판결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청와대 우병우 전(前) 청와대 민정수석과 교감한 정황이 있었다. 이번 조사 결과를 통해 그것이 일회적이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다른 사건에서도 많이 이뤄졌다는 점이 확인됐다. 한마디로 사법행정권 남용 정도를 넘어서서 명백하게 헌법상 재판 독립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게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 근본적인 고리는 상고법원 추진이었고 당시 떠돌던 상고법원을 매개로 대법원이 청와대와 재판에 대한 거래를 하고 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특별조사단은 블랙리스트는 없고, 형사 고발을 할 필요도 없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어떻게 보나.

특별조사단의 결론은 다분히 법원 내부의 판사들 특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당시 법원행정처에서 일한 사람을 위한 메시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조사내용이 방대하고 문건도 구체적인데, 정작 결론에 가서 형사고발이 필요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죄는 있는데 벌은 없다는 얘기와 같다. 모순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표 직후 판사 내부 여론이나 국민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김명수 대법원장과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형사고발 문제도 고려해 보겠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지난 2차 조사 때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는데,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한 내용은 많이 제시해 놓고 판단은 유보하는 형식이었다. 특별조사단은 말 그대로 조사한 사실관계와 증거들을 제시하는 역할에 그쳐야 하는 것이지, 결론과 사법처리 방향까지 제시하면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수사 착수 여부를 검찰이 판단해야 하고, 그다음에 기소됐을 경우 최종 판단은 해당 재판장이 해야 한다. 특별조사단이 미리 결론을 제시하면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어 매우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특별조사단의 결과 발표는 사법부에 대한 의혹과 불안감을 해소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우선 임의조사였기 때문에 한계가 명확했다고 본다. 압수수색 등 강제조사 절차가 아니면 확보할 수 있는 증거에서 한계가 있었다. 또한 판사들이 판사들을 조사한 셈인데, 그러다 보니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관련자의 진술이 모순되거나 객관적인 증거랑 안 맞는 점은 집요하게 추궁했어야 하는데, 그런 절차가 없었다. 관련자의 진술을 믿어버리고 형사고발을 할 필요가 없다고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의 핵심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 조사에서 나온 여러 가지 문제점은 최고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2015년 8월경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상고법원을 매개로 해서 그동안 정권의 입맛에 맞는 재판을 해왔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었는데, 이런 점에 대해선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법원노조)가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정문 앞에서 ‘사법농단 몸통 양승태와 관련자 형사고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30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법원노조)가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정문 앞에서 ‘사법농단 몸통 양승태와 관련자 형사고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30

-판사들을 뒷조사한 행위는 처벌하기 어려운가.

원칙적으로는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수 있는데, 직권남용죄라는 구속요건이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한 경우이다 보니, 여기에 해당하는지 애매하고 추상적인 측면이 있다. 그래서 직권남용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권리행사방해에 해당하는 부분은 입증하기 어려워도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행위는 입증이 충분히 가능하다. 쉽게 말하면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하는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판사 사찰을 하도록 한 것인데, 이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들이 해야 할 업무가 아니다. 판사에 대한 징계를 염두에 둔 감찰을 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에서 하는 업무다.

-상고법원의 입법을 놓고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재판 흥정을 벌였다는 의혹이 담긴 문건도 공개됐는데 어떻게 보나.

제가 국회의원 재직할 당시인 2014년부터 2015년 사이 여러 루트를 통해 그런 의혹을 들어왔다. 그런 의혹에 대해 다른 민주당 의원을 설득해 맨 처음 상고법원안에 동의하는 (공동발의를 했던) 민주당 의원을 개별로 접촉해서 설득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제기된 의혹이 객관적 사실이라는 게 이번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그래서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라는 말이 다시금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상황이다.

-사법부의 ‘셀프 면죄부’ ‘셀프 조사’라는 지적이 많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검찰 고발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많은데 어떻게 보나.

우선 특별조사단 결과 자체가 미흡한 부분이 많다. 의혹은 차고 넘치는데 결론이 미흡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 수사는 반드시 해야 한다. 특히 최고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은 법원을 퇴직했다. 대법원 스스로 조사할 수 있는 건 현직 판사에 대해 가능한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보다 더 하위급인 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는 가능하지만, 자신보다 더 윗기수 선배에 해당하는 양 전 대법원장 등 퇴직한 사람을 상대로 하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사건은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수준이 아니라, 헌법상 재판 독립 원칙을 심각하게 무너뜨리고 형사상 직권남용죄, 증거인멸죄 등에 해당할 수 있는 부분이라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검찰 수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앞으로 사법부가 사법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어떤 조치를 해야 한다고 보나.

사법부가 자꾸 뭔가를 숨기려고 하거나 적당히 덮으려고 해선 안 된다. 이번 기회에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번 조사 결과를 금요일 저녁에 발표했는데, 그렇게 한다고 해도 어차피 모든 언론이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안이라서 대서특필할 수밖에 없다. 금요일 저녁 슬쩍 발표한 문제도 그렇고 세월호 등의 키워드를 가진 문건에 대해선 관련성이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번에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그런 부분도 일선 판사들이 요구해서 전국법관회의에서 공개하기로 했다. 어차피 다 밝혀지게 돼 있고 공개를 요구당하기 때문에 적당히 넘어가려고 해선 안 된다.

나아가 사법부 수장이었던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두둔하려고 해선 안 된다. 현재 근무하는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들을 ‘제 식구 감싸기’로 보호해서도 안 된다. 사법부는 그동안 법원 내부 무제가 외부로 알려지면 사법부 신뢰가 무너지고 재판 독립에 의심이 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자꾸만 뭔가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할 점은 사법부의 신뢰는 무너진 지 오래다. 그렇게 적당히 감추려는 태도가 오히려 사법부 신뢰를 더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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