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정제 이사장

조정제 원불교 사)아프리카어린이돕는모임 이사장

[천지일보=최유라 기자]

◆아프리카의 ‘검은 붉은악마’

‘오~ 필승 코리아!’. 최근 막을 내린 남아공월드컵 시즌으로 떠올려 보면 약간 서툴지만 혼신을 다해 한국 축구팀을 응원하는 아프리카 청소년들을 기억해낼 수 있다. 이들은 국내외로 방송을 탔던 ‘검은 붉은악마’이다. 덕분에 원불교도 다양한 루트로 함께 전파를 탔다.

원불교 사)아프리카어린이돕는모임은 현지에 있는 남아공의 사막마을 라마코카지역 청소년 100여 명을 모아 ‘검은 붉은악마’ 응원팀을 창간했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붉은악마’ 응원, 풍물놀이, 태권도를 선보이며 응원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아프리카 아이들은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면서 조금씩 꿈과 비전을 갖기 시작했다.

사)아프리카어린이돕는모임은 아프리카에서도 스와질란드의 까풍아지역, 남아공의 라마코카지역을 지원해주는 해외 NGO 단체로 1996년 출범했다.

조정제(72․사진) 이사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김혜심 교무의 권유로 이곳에 발을 들였다. 그는 올해 유난히 더운 여름을 맞았다며 아프리카 아이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 남아공월드컵이 개최되기 전 한국의 ‘붉은악마’ 문화를 전수받은 아프리카 청소년들이 한국 축구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연습하던 중 찍은 사진. (사진제공:아프리카어린이돕는모임)

◆유럽의 지배가 낳은 의타심

조 이사장은 아프리카인들이 오랫동안 유럽에 지배를 받아오면서 백인 우월주의가 생겼고 결국 자국의 능력보다 타국의 능력으로 의지하려는 생각이 뿌리 깊게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스와질란드는 ▲극심한 빈곤과 기아 ▲어린이 사망률과 모성 사망률 ▲에이즈와 말라리아 질병이 가장 심한 나라다. 특히 해발 1100m 높이에 있는 플라토(Platrau) 지대 스와질란드는 물이 너무 부족해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펌프를 만드는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 계약 조건으로 마을 추장에게 노동력 5%라도 마을 주민들로 구성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여전히 의타심이 강한 아프리카인들이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주민들 없이 지하수 펌프시설이 완성됐다.

그러나 놀라운 변화는 올해 시작한 식수개발 사업에서 나타났다. 마을까지 파이프로 물을 끌어올린다고 하자 마을 주민들은 물을 쉽게 공급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면서 공사계약조건에서도 조금씩 협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을사람들은 물을 공급하는 시간을 스스로 정해 물을 받아갈 수 있도록 규칙을 정하는 등 능동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조 이사장은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의 자주정신이 아프리카에서 실현된 것”이라며 당시 느낀 커다란 변화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교육과 경제의 장 마련

사)아프리카어린이돕는모임은 처음에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교육이 우선 돼야겠다는 생각에 ‘Free school’을 만들었다. 이곳에는 학부모도 함께 와서 영어를 배우는데 한국유치원에서 배우는 동요, 놀이, 한국문화 등도 배울 수 있다.

또한 일부다처제가 전통인 아프리카에서 여성의 권익을 증진시키고자 여성개발센터를 세웠다. 이곳에서 여성들은 구슬 끼우기, 공예품 제작, 재봉기술 등을 배워, 수작업으로 만든 제품을 시장에 팔아 얻는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올해는 아프리카인들의 일자리를 제공해 주기 위해 빵공장도 설립했다.

조 이사장은 앞으로 돼지나 닭과 같은 가축사업을 시도해 이들의 경제적인 자립을 시도할 생각이다. 하지만 조 이사장은 당장 주민들이 먹고 살 식량도 없는데 가축사료는 어떻게 감당해 낼지 걱정이 많다.

▲ 남아공월드컵이 개최되기 전 한국의 ‘붉은악마’ 문화를 전수받은 아프리카 청소년들이 한국 축구선수를 응원하기 위한 연습을 하던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아프리카어린이돕는모임)

◆하루에 죽 두 끼면 다행

스와질란드에서 먹는 주식은 밀로 만든 ‘밀리밀’이다. 이것을 물에 풀어 삶으면 ‘죽’처럼 된다. 그나마 잘 먹으면 두 끼, 형편이 나은 집안은 육류를 조금 넣을 뿐 결국 죽밖에 먹을 것이 없다.

또한 먹을 물도 부족해 대부분 수질성 피부병에 걸렸으며 약을 구하기도 어려워 간혹 약을 발라주면 ‘새살이 돋는 게 눈에 보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나마 얼마 전 식수개발사업으로 파이프를 통해 물이 공급되기 시작했지만 총 만 명이나 되는 인구가 듬성듬성 움막을 치고 살고 있는 주민들 중 혜택을 받게 된 500호 밖에 되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겪으로 그동안 지원금을 보내왔던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도 최대 지원기간 7년이 다 차면서 올해부터 지원금이 끊어진 상태다.

비록 꾸준히 지원하는 고마운 손길들이 있어 당장 문제가 커지진 않겠지만 그만큼 지원 규모가 축소됨에 따라 아프리카에서 조속히 해결돼야 할 생계 및 생명문제가 지연된다는 것이 가장 큰 난제다.

◆“새마을정신 심을 것”

조 이사장은 앞으로 장기간 해외원조의 중요성과 지원규모 확대에 목소리를 높일 계획이다. 어떤 일을 단기간에 완성하는 것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정책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그는 “단기간에 원조를 받았다는 지역을 가봐라. 잠시 쉬어간 흔적밖에 없을 것”이라며 장기간 원조사업도 단기간 못지않게 중요함을 강조했다.

또한 아프리카를 놓고 대량으로 물량공세를 하는 중국 NGO 단체나 KOICA의 10배 규모인 일본국제협력단(JAICA)의 지원으로 아프리카에 공장을 세워 NGO 사업을 벌이는 일본을 볼 때 한국은 아직 아시아에서 이들과 경쟁상대가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 이사장은 “한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전하는데 큰 발판이 됐던 ‘새마을운동’이라는 브랜드가 있기에 이러한 자주정신을 심어주는 것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필요한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초창기 시절 국내에도 도울 게 많은 데 굳이 멀리 나간다며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던 당시를 회상했다.

“해외원조에 이기심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먼저 돕는다면 언제간 저들도 우리를 도울 날이 오지 않겠냐”고 말하는 그의 여유로운 미소 속에서 세상과 우주가 결국 하나임을 전하는 원불교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 사)아프리카어린이돕는모임 조정제 이사장 약력 >
- 경남 고성 출생
-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 제4회 행정시험 합격
-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근무
- 미국 캔사스 주립대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 해양대 명예 경영학 박사학위 취득
- 국토연구원 부원장 역임
- 대한국토 도시계획학회 회장 역임
-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역임
- 해양수산부 장관 역임
- 국무총리실 정책평가위원장 역임
- 現 경원대학교 석좌교수
- 現 ‘아프리카어린이돕는모임’ 이사장
- 월간 <수필문학> 수필부문 등단
- 월간 <문학공간> 소설부문 등단
- 수필집 <좁은 땅 넓은 바다>, <책을 태우고> 등
- 現 해외원조단체협의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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