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에 그려진 해 구름 사슴 학 대나무 ⓒ천지일보(뉴스천지)
영원한 생명을 소망한 인간의 염원 담겨

[천지일보=이지수 기자] 인간은 오랜 세월동안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꿈꿔왔다. 이러한 오랜 염원이 잘 표현돼 있는 것이 바로 십장생(十長生)이다.

십장생은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상징하는 10가지 동물과 식물로 해 산 물 돌 소나무(대나무) 달(구름) 불로초 거북이 학 사슴이다.

이는 자연물을 숭배하던 우리 조상들의 토속 신앙과 도교에서 유래된 신선사상이 융합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 신선사상에서 비롯된 십장생
신선사상(神仙思想)은 불로장생의 신선을 믿고 그와 같이 죽음을 초월해 영원히 살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진 것인데 우리나라에 전해져오는 대부분의 설화나 실화가 이 신선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십장생이 부분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아 이 사상은 고구려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설날에 십장생 그림을 궐내에 걸어놓는 풍습이 있었다. 이후 벽과 창문에 그려 붙였고, 병풍이나 베갯머리, 혼례 때 신부의 수저주머니, 선비의 문방구 등에도 그리거나 수놓았다.

해, 달(구름), 돌, 물은 자연 그대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예로부터 왕가의 상징물로 여겼으며 무한한 생명력을 지닌 불로장생을 표상한 것이다.

◆ 구름은 하늘 궁정

▲ 학은 신선의 공중사자 ⓒ천지일보(뉴스천지)

구름에 관해 조위(조선 전기 문신)는 ‘만분가(萬憤歌)’에서 ‘하늘 위의 궁정의 열두 누각은 어디인가. 오색구름 깊은 곳에 하늘의 신선이 사는 집이 가렸으니…’라고 기록했다.

‘만고강산 유람할 제 삼신산이 어드메뇨. 일봉래(一蓬萊) 이방장(二方丈) 삼영주(三瀛洲)가 아니냐’로 시작되는 단가(판소리 전 목청을 가다듬기 위해 부르는 짧은 노래) ‘만고강산(萬古江山)’에서도 구름을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봉래산에 올라서니 수많은 봉우리와 골짜기들과 부용들은 하늘 위에 솟아 있고 백절폭포 급한 물은 은하수를 기우린 듯 잠든 구름 깨어 일고 맑은 안개 잠겼으니 신선이 사는 곳이 분명 하구나.’

이는 사기(한나라 무제 때 쓰여진 역사서) 봉선서(封禪書)의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三神山)은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발해 중에 있으며, 여러 선인들 및 불사약이 모두 그곳에 있고 온갖 새와 짐승들이 다 희고 황금과 은으로 궁궐을 지었는데 도착하기 전에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구름과 같다고 한다’는 내용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 보건대 앞의 오색구름과 안개 등 하늘에는 분명 사람이 아닌 누군가, 즉 영생불사하는 신이라는 존재가 살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 불로초가 있는 곳은 신선세계
‘용도(龍圖) 생각하니 물위에 띄어 있는데 낙수(落水)의 거북 하늘이 내린 것, 왕가를 상서롭게 하네. 스스로 신선의 뒤에 뚜렷이 나타난 뒤로 문득 산 속에 들어가 날마다 편안히 놀았네.’

이색(고려 말기 문신)이 그의 십장생 시에서 거북이에 대해 기록해 놓은 내용이다. 이를 보면 거북이가 장수의 상징물뿐만 아니라 영물로도 인식됐음을 알 수 있다.

약 2000년 전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자 진시황이 애타게 해맨 불로초는 예로부터 선계(仙界)의 식물로 여겨졌다.

박인로(조선 중기 무신 겸 시인) ‘선상가(船上歌)’를 보면 ‘장생불사약을 얼마나 얻어내며’라는 대목이 있고 <장화홍련전>에는 ‘옥황상제께서 명을 받아 삼신산으로 약을 캐러 감에 길이 다르기로…’라는 표현으로 보아 불로초가 자라는 곳이 신선세계로 여겼음을 암시하고 있다.

학은 신선의 공중사자(空中使者)로 간주해 신비적인 동물로 알려져 있어 중국에서는 봉황 다음으로 진중하게 여긴다.

조선의 정철(조선 중기 문신 겸 시인)이 지은 ‘성산별곡(星山別曲)’을 보면 ‘하늘 높이 떠있는 학이 이골의 신선이라’했고 송순(조선 중기 문신)의 ‘면앙정가(俛仰亭歌)’에서는 ‘구름 탄 청학이 천리를 가리라’고 한 것을 보아도 신선과 함께 학이 있다고 여겼다.

▲ 사슴의 뿔은 왕권을 상징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왕권 상징인 사슴 뿔
사슴은 1000년을 살면 청록(靑鹿), 2000년을 살면 흑록(黑鹿)이라고 하는데, 흑록은 뼈도 검어 이를 얻으면 불로장생한다는 말이 있다. 신라의 왕관 가운데 나무나 새의 날개, 사슴의 뿔 무늬가 장식돼 있는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사슴의 뿔은 왕권의 상징이었다.

동명왕개국설화(東明王開國說話)에는 사슴에 대해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영적인 동물로 표현하고 있다. 뿔이 나뭇가지 모양이어서 대지를 상징하고, 재생되기 때문에 영생(永生)을 상징하기도 한다.

절개와 지조, 선비정신을 나타내는 소나무는 애국가에도 등장할 만큼 우리 민족의 얼을 상징하는 나무로 손꼽힌다.

큰 규모로 궁궐 어좌 뒤, 임금의 초상인 어진(御眞)을 모신 진전(眞殿)이나 혼전(魂殿) 등에 비치된 ‘일월곤륜도’에서의 소나무는 나라와 왕실의 영원한 번영을 상징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여러 문신의 시를 보아 알 수 있듯이 십장생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신선세계에서 신과 같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싶은 오랜 바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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