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청나라 외교문서, 청-조선 관계의 변화를 담다’를 주제로 한 고문헌 강좌가 열린 가운데 홍성구 경북대학교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29
25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청나라 외교문서, 청-조선 관계의 변화를 담다’를 주제로 한 고문헌 강좌가 열린 가운데 홍성구 경북대학교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29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 강좌
양국간의 관계의 변화 풀어 내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조선과 중국의 명·청 왕조 사이에는 오랜 외교 관계가 이어져 수많은 외교문서가 교환됐지만, 현존하는 외교문서는 극히 드뭅니다.”

홍성구 경북대학교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25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청나라 외교문서, 청-조선 관계의 변화를 담다’를 주제로 한 고문헌 강좌에서 이같이 말했다.

홍 교수는 “조선과 청나라는 오랫동안 책봉과 조공의 의례를 교환하며 이에 수반되는 문서를 주고받은 특수한 관계”라며 “남아있는 문서의 대부분은 청대 후기(근대)에 생산된 것이고, 행정기관 간의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 주고받은 실무 문서였기에 한문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명나라는 한족, 청나라는 만주족을 왕조로 두고 있다. 명나라를 차지한 청나라는 그 언어를 만주문자로 사용했지만 조선과 청조 사이의 외교문서에서는 만주글자(文)로 쓰인 경우가 드물었고, 한문을 많이 사용했다.

◆황제문서와 관보문서

홍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전근대 시대에서는 ‘외교’라는 개념은 없었다. 외교는 대등한 관계를 말하는데, 당시에는 동아시아권에서 중국과 대등한 위치에 있는 나라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발신자와 수신자가 누구냐에 따라 외교문서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타국가의 국왕 등에 보내거나 이에 응하는 내용이 담겨있는 문서가 바로 외교문서인 셈이다. 외교문서는 크게 ‘황제문서’와 ‘관보문서’로 나뉜다. 황제가 발급하거나 황제가 수신자인 문서가 황제문서다. 관보문서는 관청과 관청끼리 주고받은 것으로 황제문서보다 종류가 더 많다.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를 담은 외교문서 (제공: 국립중앙도서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29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를 담은 외교문서 (제공: 국립중앙도서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29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청태종조유(淸太宗詔諭)’라는 표제어가 부여돼 있는 문서책이 보존돼 있다. 모두 8장으로 구성됐으며, 이 문서는 청나라 왕조 황제명의로 발급된 공식 외교문서다. 숭덕(崇德, 청나라 태종 때의 연호) 연간에 이 문서는 병자호란의 마지막

국면을 보여주는 문서이기에 한국인에게는 여러 가지 회환을 느끼게 하는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병자호란에 대한 일화는 최근 공개된 영화 ‘남한산성’에도 등장한다. 산성으로 피신한 임금에게 최명길이 청나라가 제시한 항복 조건을 아뢰는 장면이 나온다. 그 내용에 따르면, 임금은 남색의 평복을 입어야하고 죄를 지었으니 남문은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홍 교수는 “영화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역사적 사실을 과장하기도 한다”라면서도 “최명길이 실제로 읽었을 법한 것이 바로 ‘청태종조유’”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문서의 내용을 ‘청태종실록’의 해당 내용과 대조해보면, 강희(康熙, 청나라 성조 때의 연호) 연간 ‘청태종실록’을 중수·교정하는 과정에서 청나라 왕조 초기 사료에 대한 많은 부분의 수정이 이뤄졌음도 확인된다.

또 이 문서책에 있는 숭덕 연간의 문서와 강희 연간의 문서를 비교해 보면, 문서와 어보의 문자가 숭덕 연간의 한문에서 강희 연간의 만한합벽(滿漢合璧: 공식 문서는 만주어가 원본이고 이것에 중국어를 덧붙이는 것)으로 바뀐 사실도 발견된다. 아울러 이 문서들은 홍타이지가 대청국(大淸國) 수립의 명분으로 삼았던 대원(大元, 원나라)의 국새 ‘제고지보(制誥之寶)’라는 어보(御寶)가 찍힌 몇 안 되는 현존 문서이기도 했다.

◆책봉 관련 외교문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는 조선의 국왕 및 왕세자, 왕세제(王世弟)의 책봉을 위해 발급된 고명(誥命)과 그에 딸린 부속 문서 7점이 있다. 장서각의 고명 문서는 대부분 영조와 관련된 것이고, 영조 어머니의 신주를 모신 육상궁(毓祥宮)에서 보관하던 유물이다. 다른 외교문서와는 별도의 장소에서 관리됐기에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조선 국왕이 청 황제에게 보낸 표문(表文:임금에게 표로 올리던 글)이 2점 있다. 이 문서는 조선에서 작성한 한문 문서에 청에서 작성한 만문 번역문이 첨부된 형태이다. 외국에서 한문으로 작성해 발송한 문서를 청나라 왕조에서 어떠한 과정을 거쳐 번역했는지를 추론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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