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앨린 作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1826년 아프리카 수단에서 사로잡힌 어린 기린 한 마리가 장장 6000km 여행을 떠난다. 기린이 도착한 곳은 프랑스 파리. 프랑스인들은 목이 길고, 표범 무늬를 지닌 기린에 열광한다.

파리 어느 곳을 가더라도 기린의 흔적이 있다. 옷감 벽지 도자기 가구 장신구 등 온통 기린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기린의 점무늬와 기다란 목은 도안에 응용될 정도였다. 기린이 파리에 도착한 그 해 겨울, 유행했던 독감은 ‘자라프 독감’으로 불리었고 사람들은 감기가 걸린 환자에게 “그 ‘기린’은 좀 어떤가”하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자라파 여행기>는 프랑스 전국을 뒤흔든 기린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광활한 아프리카를 떠나 문명의 중심지 파리에서 구경거리로 전락한 기린의 일생을 통해 제국주의 시대에 아프리카가 겪는 슬픔을 들려주고 있다.

18년간 프랑스의 동물원에서 살다죽은 기린의 이름은 ‘자라파’. 자라파는 19세기 초반 이집트 통치자 무하마드 알리가 프랑스 국왕 샤를 10세 즉위를 축하하는 뜻에서 보낸 외교 선물이었다. 저자 마이클 앨린은 자라파의 여정을 통해 정치와 외교사, 자연사와 문명사로 나눠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그리스 독립전쟁, 프랑스의 왕정복고 등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했다.

자라파의 유럽여행기는 인간의 욕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노예무역을 바탕으로 이집트 근대화와 독립을 꿈꾸던 통치자 무하마드 알리, 아프리카에 계몽주의를 전파하고 유럽에는 이집트 유물을 밀매해 거부가 된 베르디나노 드로베티,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고 알렉산드리아의 ‘오벨리스크’를 파리로 옮겨온 샹폴리옹 등이 대표적이다.

계몽을 앞세워 군주 행세를 했던 프랑스는 “이집트에서 빼앗은 오벨리스크가 가장 어울리는 곳이 이집트의 낡은 항구가 아닌 프랑스 파리”라고 단언한다. 자라프는 선한 모습과 이기적인 모습을 동시에 지닌 인간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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