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 2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는 양팀 응원단이 조용하게 경기를 관전했다. 보통 경기 같으면 시끄러운 음악과 치어리더의 화려한 율동, 관중들의 흥에 넘치는 응원전이 펼쳐졌지만 이날만은 예외였다. 이날 경기는 양 구단이 공식적으로 응원단을 운영하지 않기로 해 응원전이 펼쳐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는 이날 세상을 떠난 LG 그룹 구본무 회장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LG 트윈스 구단주이기도 했던 그가 프로야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와 스포츠 사랑을 기리자는 의미였다.

구본무 회장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2년 전 여름 광주 곤지암 컨트리클럽에서 고교 동창들과 라운드를 하기 직전 클럽하우스에서 점심식사를 갖다가 그를 직접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가볍고 소탈한 복장으로 클럽하우스 복도를 걸어가면서 지인들과 담소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총수답지 않게 보통 주말골퍼와 같은 자연스러운 인상이었던 것이다. 지나치게 드러내면서 위엄을 보이려 하지 않았고, 주위 사람에게 무거운 권위를 과시하려 하지도 않았다. 비록 표면적으로 느낀 것이었지만 그동안 언론 보도등과 여러 사람의 구전을 통해서 들었던 것과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다.

구본무 회장의 스포츠 사랑은 남달랐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스포츠가 고도성장을 할 때, 그의 역할은 컸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이른바 프로스포츠 4대 종목의 팀을 운영하면서 남다른 정열을 쏟았다. 대기업 서열에서 삼성, 현대에 이어 재계 3위를 지켜나가면서 프로스포츠팀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 특히 프로야구 LG 트윈스는 구본무 회장의 큰 관심을 성적으로 보답했다. MBC 청룡을 인수한 LG는 1990년 KBO리그로 들어오자마자 그해 바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구단주를 맡았던 구본무 회장은 야구단의 우승의 여파로 럭키금성이던 그룹 CI를 LG로 바꾸는 큰 프로젝트를 단기간에 성공시킬 수 있었다.  LG 트윈스의 ‘신바람 야구’가 일으킨 젊고 친근한 이미지가 LG그룹 무형의 자산이 됐던 것이다. LG 트윈스는 구본무 구단주 체제에서 1990년에 이어 1994년 또 한번 프로야구 정상을 올랐다.

이광환 전 LG 감독 등은 구본무 구단주를 소탈함과 배려심이 깊은 분이라면서 야구인들이 필드에서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이 감독은 구본무 구단주는 1994년 우승 후 롤렉스 시계를 구단 금고에 넣었는데 “다음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는 LG 선수에게 이 시계를 선물하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이 시계의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본무 회장의 스포츠 사랑은 비단 프로야구에만 머물지 않았다. 축구, 농구, 배구 등에서도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이 표방한 ‘정도 경영’의 방침을 토대로 무리한 스카우트를 자제하고 효율적인 운영과 사람을 중시하는 시스템으로 국내 프로스포츠에 롤 모델이 됐다. 구본무 회장의 영향을 받았던 듯 LG 패밀리는 스포츠애호가가 많다.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KBO 총재를 역임했고, 구본준 LG 부회장 겸 LG 트윈스 현 구단주는 여자야구를 수년째 후원하고 있다. 
골프실력이 핸디9 정도로 수준급인 구본무 회장의 스포츠 사랑은 경제의 원리인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는 다르게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졌다. 경제인으로서 상품의 만족감이 쓰면 쓸수록 떨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는 잘 알았을 법한 그였지만 스포츠에 대해서만은 뜨거운 가슴으로 직접 즐기고 좋아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하지 않았나 싶다. 

LG복지재단이 지난해 강원도 춘천 의암호에서 물에 빠진 시민을 구해낸 고교생 수영, 수구 선수 3명에게 ‘LG 의인상’을 수여하고 상금을 주고 격려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한다’는 구본무 회장의 숭고한 뜻이 담겨 있었다. 수목장으로 자연 속에 영원한 잠든 구본무 회장의 스포츠 사랑은 결코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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