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윤후명(1946~  )

 

결혼 25년이 은혼(銀婚)이라고
누군가 알려주자
은빛이 나타났다
차디찬 별빛으로 다가가는 삶의 순간
홀로 가는 어두운 발길을
비추던 어느 날의 은빛
시(詩)가 싹트는 소리에서
그 빛은 숨쉬고
삶이 비롯되었다
은빛, 그대의 눈빛이었다.

 

[시평] 

사랑을 하고, 그리고 함께해야만 한다는 절박함과 함께 결혼을 하고, 그래서 함께 살아간 그 기간이 한 20년, 그 이상이 되면, 알콩달콩, 좋은 것 미운 것 모두 모두 겪으며, 그래서 이제는 모두를 서로 잘 알아버린 그런 세월이 됐을 것이다. 강산이 두 번, 아니 그 이상의 세월을 함께 살았으니 말이다. 

20년 하고도 또 5년이 더 지난 4분의 1세기라는 엄청난 시간을 한결같이 함께 보냈으니, 그래서 함께한 그 긴 세월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은혼(銀婚)’이라 이름한 것이리라. 은같이 변치 않으며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에게 붙여주는 이름 ‘은혼(銀婚)’. 

그 ‘은혼’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은빛 찬란한 빛이 자신도 모르게 다가왔다고 시인은 고백한다. 마치 지난 25년의 세월이 한 순간으로 축약돼, 그 은빛 찬란한 그 빛으로 잠시 반짝였으리라. 그래서 이제 초로(初老)의 시간으로 접어들어, 그 삶이 ‘차디찬 별빛으로 다가가는 그 순간, 그리하여 쓸쓸히 홀로 가는 어두운 그 발길을 은빛 찬란한 희망으로 잠시나마 밝혀주었다고 시인은 고백한다.

지금까지는 무심해서 그래서 몰랐던 그대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하는 그 말씀 ‘은혼’, 그래서 아무러한 느낌까지도 사라진 듯한 그 삶의 우리를 다시 새로운 삶으로, 그 눈동자를 갑자기 반짝이는 은빛으로 빛나게 만든 그 말씀 ‘은혼’. 어쩌면 사람은 말씀으로, 아니 이름으로 모두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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