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깊은 산골을 표현하는 ‘첩첩산중(疊疊山中)’이란 단어는 ‘산 넘어 산’으로도 사용되면서 어려움이 더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도 쓰인다. 이 말이 요즘 국회 상황이나 정국 흐름에서 딱 맞아떨어지는 말이다. 그동안 국회가 공전을 거듭하다가 어렵사리 여야 합의로 본회의를 개최해 드루킹 특검과 추경예산을 통과시키고 나니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인 헌법개정안이 또 핵심 현안이 돼 의정 운영에 발목을 잡게 된 것이다.

지난 3월 26일 국회에 접수된 정부 개헌안은 헌법 131조에서 공고된 지 60일 이내에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그 시한은 5월 24일이다. 그런 사정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은 헌법 규정에 따라 개헌안 심의를 위해 24일 오전 10시에 국회 본회의 개최를 공고했고, 정부 개헌안이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철회하지 않는 한 본회의에서 결정이 나야 한다. 이와 관련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야3당에서 22일, 문 대통령에게 자진 철회를 요청했으나 대통령이 철회를 하지 않았으니 24일 본회의에서 개헌안의 운명이 결정이 나게 된다.

개헌은 지난 대선 때 정당 후보자들이 공히 약속한 사안이다. 국회에서도 개헌특위를 구성·가동해 장기간 논의해왔으나 합의안 도출에 실패를 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6.13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지키지 위해 정부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개헌안이 국회에서 의결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당이 협조하지 않을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정부는 개헌안 발의를 강행하게 된 것이다.

정부 발의 개헌안은 일반 법률안과 달리 국회에서 토론과 수정 없이 원안을 표결에 부쳐야 된다. 의석 분포로 볼 때 표결에서 부결되거나 또는 야당이 본회의에 불참해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자동폐기 수순이 예상되는바 그렇게 된다면 향후 개헌 추진의 추동력이 없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비록 지방선거와 동시 국민투표는 물 건너갔지만 아직 실오라기 같은 희망은 남아있다. 문 대통령이 발의를 철회한 후 여야 합의로 개헌안을 발의하게 되면 연내에 국민투표가 가능한 일이다. 국가발전과 국민주권 확대를 위한 개헌을 두고 정부·여당과 야당이 마치 벼랑 끝 전술로 힘자랑할 게 아니라 첩첩산중 속에서도 지혜를 모아 해결 방도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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