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지난해 반도체 세계1위 삼성전자는 세계 메모리 시장 호황에 힘입어 매출 239조원, 영업이익 54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실적을 달성했다. 2위인 SK하이닉스 역시 매출 30조원, 영업이익 14조원 등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1조원의 법인세를 납부했다. 이는 우리나라 법인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8%에 달했다. 수출도 조선이나 자동차 같은 한국의 수출 주력 산업 기업들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반도체 수출을 이끄는 두 기업의 가치와 역할을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반도체가 잘 못되면 우리 경제가 위기를 맞고 세계 10위권 경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나 반도체 강국의 지속유지가 쉽지 않는 것 같다. 범국가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중국의 움직임 때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3000억 위안(약 51조원) 규모 펀드 조성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중국은 2014년 1400억 위안 규모 반도체 펀드를 조성했는데 그 두 배가 넘는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보고서에서 중국 정부가 2014년 펀드 조성을 주도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목표로 새로운 반도체 펀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국이지만 자급률은 2016년 기준 13.5%에 머무르고 반도체 무역수지는 적자이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5%까지 끌어올려 한 해 2000억 달러에 이르는 반도체 수입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중국 국영 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은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메모리(저장용) 반도체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중국 화웨이는 중국산 메모리 반도체 도입을 검토 중이다.

또한 중국은 AI(인공지능)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기술 개발 속도도 높이고 있다. 중국 정부가 투자한 AI 반도체 기업 캠브리콘테크놀로지스는 지난 3일 음성·이미지 인식, 자율주행차 같은 AI 기능을 클라우드에서 구현할 수 있는 AI 반도체를 공개하면서 기술력을 과시했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해 먼저 반도체부터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이 반도체 자급에 성공하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공급과잉과 가격 하락을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이는 반도체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가 큰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국영 기업들이 반도체 양산을 시작하면 평균 판매 가격이 급속도로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최근 수년간 반도체 호황으로 인해 분기마다 조 단위의 이익을 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도 저가 경쟁으로 매출과 이익이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스마트폰 분야에서 우리나라 위상은 급격히 하락했다.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스마트폰 7820만대를 판매해 세계 시장 점유율(22.6%) 1위로 미국 애플(15.1%), 중국 화웨이(11.4%)·샤오미(8.2%)에 앞섰지만 애플과 화웨이 판매량이 작년보다 각각 3%, 14% 늘어난 반면 삼성전자는 2% 감소하며 뒷걸음 쳤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점유율을 합하면 30%가 넘어 우리나라가 밀리는 형국이다. ICT제조업의 상징인 스마트폰이 중국에 추월당하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 우리 정부와 업계는 ‘반도체 굴기’라는 중국의 전략을 잘 알고 있지만 뚜렷한 대응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메모리 호황에 취해서 자만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반도체 성공 신화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지만 이미 세계 최고라는 인식으로 말미암아 정부 정책에서 소외됐다. 반도체 코리아 위기는 한국 경제의 중심축인 정보통신기술 산업이 흔들리는 것으로 경제 전체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IT강국 코리아’의 지위도 잃을 수밖에 없다. 성장동력인 IT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시급히 규제를 혁파해 기업들이 투자와 혁신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는 여전히 세계 산업 강국들이 관심을 두는 산업이다. 중국 공세가 한국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이 분명한 만큼 민·관이 협력해서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차세대 공정 기술 격차 확대와 후방 생태계 경쟁력 제고를 통해 중국 산업 구조와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투자도 병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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