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4.27남북정상회담의 좋은 결과로 잘 빚어진 한반도 해빙 무드가 자칫 어긋난 방향으로 틀어질 우려가 엿보인다. ‘판문점 선언’의 후속 절차로 16일 열릴 예정이던 남북고위급회담이 북한의 일방적인 취소 결정으로 결렬됐고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회담 당일 이른 새벽에 팩스로 보내온 북한 리선권 단장 명의의 통지문에서 북한은 한미 합동 공중훈련중인 ‘맥스선더’를 비난하면서 고위급 회담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알려왔던바, 군사긴장 완화 장치 마련과 남북경협 예비적 조치 등을 한창 준비하던 정부로서는 예측 못한 통지문으로 당황했을 것이다.

통일부가 밝힌 북한의 고위급회담 취소 이유는 한미 연합공중훈련인 맥스 선더 훈련 외에도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국회 출판 간담회였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에서는 “이번 훈련은 판문점 선언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며 좋게 발전하는 조선반도 정세흐름에 역행하는 고의적인 군사적 도발”이라고 보도했으며, 또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워 우리 최고 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판문점 선언을 비방 중상하는 놀음도 버젓이 방치해놓고 있다”고 덧붙였다는데, 이 두 가지가 대화 단절의 빌미가 된 것이다. 

그간 한국영공에서 한미 합동 공중 훈련은 정기적으로 실시해왔고, 지난 4.27남북정상회담 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도 어느 정도 양해를 했다는 말도 나돌았다. 그렇다면 그것보다는 첫 번째 이유로 표면에 내세울 수는 없었겠지만 태영호 전 공사의 국회에서의 행사와 기자회견이 북한당국의 눈에 거슬렸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원인의 하나라 생각된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의지를 보여 왔고,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될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조치’가 핵심 이슈가 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이 문제를 두고 ‘세기의 한판 승부’로 결판 날 예정으로 있었다. 그런 만큼 두 정상 간 통 큰 양보가 이뤄져 미국에서는 ‘북한의 비핵화’라는 명분을 얻고, 북한에서는 정치체제의 인정과 함께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실익을 얻는 결과를 바란 것인데 일이 묘하게 꼬여버렸다. 북한에서는 미국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승전국처럼 행세하면서 북한에 압박을 가한다는 것을 강하고 내비쳤고, 트럼프 대통령도 대화 판을 깨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선회하고 나섰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전쟁 상태가 휴전 중이고 분단국의 처지에 놓인 곳이 바로 한반도이다. 한반도의 평화 무드를 견인하는 것은 당연히 ‘북한의 비핵화’ 조치라 할 수 있는바 한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평화를 위하여 북미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시각과 성공 염원은 절실할 것이다. 그러한 중차대한 상황을 맞은 이 시기에 북한이 회담을 거부할 정도로 화해 분위기를 망치는 일은 자제돼야 한다. 국가안보와 국민안전에 관해서는 의견이 대립되지 않는 원칙이 준수돼야 하겠다. 여야가 갈라져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이견으로 맞서고, 보수와 진보가 다른 목소리를 낸다면 결국 국익을 해치고 국론만 분열될 것은 뻔한 일이 아닌가. 

그런 상황이라면 응당 남북 간 긴장 조성 행위는 자제해야 하건만 지난 14일 심재철 국회부의장이 국회의원회관에서 행한 태영호 전 공사 초청 강연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로 생각된다. 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 국회에서 포럼 행사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의 좋은 결과로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 무렵에 북한이 보기에는 배신자인 태영호 전 공사를 북한전문가라고 해 ‘미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 전망’ 포럼에 불러 강연하게 한 것은 북한통신이 보도하듯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웠다”는 빌미 주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태 공사는 4.27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근 외교적 행보가 ‘쇼맨십’에 불과하다”거나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 바 있는데, 고위급회담 개최 전날(14일) 가진 국회 기자회견장에서도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일부에서는 그가 북한 공사로서 지위는 과장급(서기관), 국장 대리급에 지나지 않아 북한의 최근 정보에 대해 근거와 신빙성이 부족함에도 ‘북한의 절대 핵 포기 불가’ 등 강경 발언은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하고 있다. 그와 1997년 북한 노동당 비서 신분에서 대한민국에 귀순한 황장엽 전 비서와 비교가 된다.

황장엽 비서는 북한 최고명문인 김일성 종합대학 총장,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등 중앙부서 요직을 거친 유명 인사였지만 살아생전 그는 강연에서 할 말과 안 할 말을 잘 가려서 전달했다. 요지는 ‘전쟁 없는 한반도’를 위해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인간중심의 철학이요, 주체사상이었다. 그런 황 비서에 비해 직위, 경력 등에서 뒤떨어지는 태 전 공사의 강연은 “김정은 쇼맨십”과 “북한의 핵 포기 불가” 등 김정은 깔아뭉개기로 일관된바, 지금처럼 남북 화해 무드가 움트는 시기에 북한에게 트집을 주는 자체가 긁어 부스럼이다. 개인이 중요한 집안 행사를 앞두고서 경건해지는데 하물며 국가대사에서는 더 진중해야 되지 않겠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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