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병원에서 故김영철 열사의 마지막 모습. (제공: 5.18기념재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1998년 병원에서 故김영철 열사의 마지막 모습. (제공: 5.18기념재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야학 통해 약자들의 삶 보듬었던 지식인

고문·투옥… 후유증으로 투병하다 98년 영면

“장학재단 통해 아버지의 삶 기념하고파”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이제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는 5.18 광주민주항쟁은 전두환의 정권 찬탈 음모로 자행된 근현대사에 있어 가장 큰 비극의 역사입니다.”

5.18당시 시민군 ‘항쟁지도부 기획실장’으로 전남도청을 끝까지 사수하다 신군부에 체포돼 고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한 고(故) 김영철 열사의 장남 김동명(42, 광주시장애인체육회)씨가 5.18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강한 어조로 답했다.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앞둔 17일 김동명씨를 광주시장애인체육회에서 만나 아버지 김영철 열사가 5.18에 참여하게 된 사연을 들어봤다.

김영철 열사는 1983년 12월 25일 성탄절 특사로 풀려난다. 하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이상 증세가 심해지면서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고 1998년 8월 16일, 만 5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아들 김동명씨에 따르면, 김영철 열사는 1980년 5월 계엄령이 선포되고 광주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시내로 나갔다가 계엄군에 의해 자행되는 참상을 목도하고 시민군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언론을 통제하고 군인들이 같은 동족인 광주시민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상황을 김영철 열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곧 투사의보 대자보를 광천동 자신의 자택에서 준비해 들불야학 동지들과 의기투합했다. 그는 YWCA신협 상무로 재직하면서 들불야학, 노동야학을 열고 약자의 편에 서서 정의를 부르짖던 시대의 지성인이었다. 5.18 당시 32세의 나이에 시대의 아픔을 보듬고 자유민주주의를 이 땅에 뿌리내리고자 노력했던 젊은 양심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5.18의 상처는 너무도 깊어 가족들의 삶은 1980년 5월에 갇혀 버렸다. 지금껏 아픔을 끌어안고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5.18진실이 세상에 밝혀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지난 17일 광주시장애인체육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동명씨. 5.18 당시 전남도청을 사수한 시민군이었던 아버지 김영철 열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지난 17일 광주시장애인체육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동명씨. 5.18 당시 전남도청을 사수한 시민군이었던 아버지 김영철 열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5.18 당시 5살이었던 김동명씨.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와의 추억은 없었다. 김동명씨는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머리를 벽에 찍고 갑자기 밖에 나가서 안돌아 오는 등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면서 어머니는 잠을 못자는 날이 더 많았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김영철 열사는 마지막 시민군이 돼 도청을 지키려다 같이 들불야학에 몸담았던 윤상원 열사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본 장본인이다. 상무대 영창에서 내란 음모 수괴죄로 1심에서 12년형을 받고 광주교도소로 수감돼 2년 동안 온갖 고문에 곤욕을 치르다 크리스마스 특사로 석방됐지만, 심한 고문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된 상태였다.

김동명씨는 어린 마음에 여느 아버지와 다른 모습에 상처받았고 어머니는 3명의 자녀를 키우기 위해 온갖 궂은 일을 해야 했다. 3남매는 도시락도 못 싸고 입을 옷이 없어 친구들이 입었던 헌옷을 입고 학교에 다녔다. 초등학교 때 중이염이 심했는데도 치료를 못한 기억, 목욕탕에서 확인한 아버지 몸에 총 탄 자국, 어린 그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기억이었다. 가족들은 아버지, 남편이 ‘빨갱이, 간첩, 폭도’라며 온갖 핍박에 시달려야 했다.

김동명씨는 고등학교, 대학교시절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했다. 두 여동생 역시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설움에 힘겹게 살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헌신 덕에 3남매 모두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다.

김영철 열사의 부인 김순자씨가 지난 2015년 8월 5.18기념재단을 방문해 김영철 열사의 생전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제공: 5.18기념재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김영철 열사의 부인 김순자씨가 지난 2015년 8월 5.18기념재단을 방문해 김영철 열사의 생전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제공: 5.18기념재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성인이 돼 어머니에게 들은 아버지. 아버지의 삶을 통해 5.18당시 민주수호를 위한 열망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깨닫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어머니 김순자(65) 남편이 생전에 친필로 쓴 ‘사랑하는 아내여’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면서 아픔을 견디고 있다. 김순자 씨는 ‘들불야학’에서 함께 활동한 전남대 출신 박관현, 윤상원 열사 등에게 밥을 해서 먹이고 물심양면으로 야학을 돕기도 했다. 5.18 이후 윤상원과 김기순의 영혼결혼식도 김순자씨가 중매로 나선 덕에 성사됐다. 윤상원 열사의 집에 찾아가 직접 의논했고 1982년 결혼식이 이뤄졌다.

김영철 열사는 박기순, 윤상원, 박용준, 신영일, 박효선과 함께 ‘들불열사’로 5.18광주민중항쟁의 중심인물로 역사에 기록됐다.

오는 26일에는 김영철 열사를 비롯한 7인의 들불열사 합동 추모제 및 제13회 들불상 시상식이 국립5.18민주묘역 ‘역사의 문’앞에서 들불열사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다. 올해 들불상 수상자는 검찰 내부 미투의 주인공 서지현 검사다.

김동명씨는 아버지 김영철 열사의 이름으로 장학재단이나 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들불상 시상식에 유족대표로 참석한 김동명씨는 “그동안 전남대출신 중심의 들불열사 위주의 기념사업도 좋지만 김영철 열사에 대해 재조명하는 기회로 삼고 싶다”며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나타냈다.

지난 2월 18일 광주 YMCA에서 열린 2018 민주가족 합동세배 행사에서 고 김영철 열사의 가족과 윤장현 광주시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지난 2월 18일 광주 YMCA에서 열린 2018 민주가족 합동세배 행사에서 고 김영철 열사의 가족과 윤장현 광주시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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