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꿈꾼 자주외교, ‘주미대한제국공사관’서 되살아난다
고종 꿈꾼 자주외교, ‘주미대한제국공사관’서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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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복원공사를  마치고  오는  22일  개관한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내려진  태극기도  다시  게양된다.  사진은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1983년  모습(왼쪽)과  개관식에서  태극기가  게양될  것을  미리  보여준  모습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복원공사를 마치고 오는 22일 개관한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내려진 태극기도 다시 게양된다. 사진은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1983년 모습(왼쪽)과 개관식에서 태극기가 게양될 것을 미리 보여준 모습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개관

태극기 게양, 113년만에 다시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오는 22일 미국 워싱턴 D.C.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 태극기가 게양된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태극기가 내려진 지 113년 만이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대한제국의 자주외교를 행사해 세계에 독립국임을 천명했던 고종의 외교적 노력과 꿈이 담긴 역사적인 장소다. 외교문제가 어느 때보다 중시되는 현 시점에서 태극기가 다시 펄럭이는 것은 민족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고종의 자주적 외교 정신을 되새기는 등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미수호 통상조약 체결

1882년 5월 22일 조선은 서양 국가 중 최초로 미국과 외교협정을 맺었다. 이에 따라 1883년 5월 조선의 수도 한성(서울) 정동에 미국공사관이 개설되고, 조선주재 미국 초대 공사로 루셔스 푸트(Lucius H. Foote)가 부임했다. 1883년 조선은 미국의 공사관 개설에 대한 답례로민영익을 대표로 하는 보빙사(報聘使)를 파견했다. 보빙사는 같은 해 9월 미국 제21대 대통령 아서를 예방했다.

조선은 이들을 통해 서양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됐고 미국인 군사 교관, 광산 기술자, 학교 교사들을 초빙하는 계기가 됐다. 1888년 1월 1일 미국에 도착한 박정양 공사와 일행은 같은 달 17일 클리블랜드 대통령에게 고종의 국서를 전달했다.

이틀 후 백악관 부근 피서옥(皮瑞屋)에 첫 번째 공사관 사무소를 개설했다. 이듬해인 1889년 2월 13일 현재의 공사관 건물로 이전했다. 1891년 12월 1일에는 고종이 자신의 내탕금과 황실자금으로 당시 거금 2만 5000달러에 건물을 매입했으며, 대한제국말까지 주미대한제국공사관으로 사용했다. 공사관 건물은 애초 1877년 미국 남북전쟁 참전군인 출신 정치인이자, 외교관인 세스 펠프스(Seth L. Phelps)의 저택으로 건립됐던 것이다.

시대적으로 보면 1884년 개화파에 의해 갑신정변이 일어났으나 3일 만에 실패했다. 갑신정변은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정변이다. 이후 조선왕실은 새롭게 미국을 통로로 한 개화정책을 추진 중이었고,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중요한 장소로 꼽혔다. 실제로 1893년 개최된 시카고 만국박람회 참가 준비 등 16년간 활발한 외교활동의 중심 무대로 쓰였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벽돌 구조로 돼 있으며, 대한제국이 외국에 설치한 공관들 중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시카고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당시 공사관 내부를 촬영한 사진자료에 따르면, 1층은 외부의 손님을 맞이하는 접견실 기능의 ‘객당’과 사교장 기능의 ‘식당’ 등으로 구성됐다. 조선의 외교관이 미국 정부 혹은 미국 주재 열강의 외교사절들을 초청해 파티를 열고 적극적으로 외교활동을 전개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돼 황제국으로 선포된 이후에도 주미 외교관들은 공사관 1층에 ‘정당(正堂)’이라는 특별한 방을 둬 고종황제 어진과 황태자 예진, 태극기 1장을 모셨다. 정당에서는 ‘망궐례’도 거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지방 관아에서 임금이 있는 궁궐을 향해 드리는 예의로, 음력으로 매달 1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복원공사 전과 복원공사 후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복원공사 전과 복원공사 후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단돈 5달러에 강탈

하지만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국권을 빼앗아간 일제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단돈 5달러에 강제 매입해 되팔았다. 이후 공사관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아프리카계 군인들의 휴양시설과 화물운수노조 사무실, 그리고 개인주택 등으로 사용됐다.

빼앗긴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건물은 미주한인사회에서 오히려 독립의 상징물로 떠올랐다. 미주한인들이 공사관 건물을 ‘반드시 주권을 회복하고, 다시 찾아야할 국권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1910년대에 제작된 우편엽서에는 ‘자주독립 염원’에 대한 재외동포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독립운동가 김호(1884∼1968)의 외손자인 안형주 선생이 보관하던 기록물에서 발견된 우편엽서 하단에는 ‘미국와싱톤대한뎨국공사관’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엽서 앞면에는 대한제국공사관 건물 전면의 모습이 담겼으며, 건물 옥상에는 커다란 태극기를 합성해 그려 넣었다. 이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건물이 미국 내에서 자주독립의 상징물로 널리 인식되고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위싱턴 대한제국공사관 엽서 앞면 (출처:국외소재문화재재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위싱턴 대한제국공사관 엽서 앞면 (출처:국외소재문화재재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되찾은 `주미대한제국공사관'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 이후 대한제국 시대의 해외 공사관 중 유일하게 내·외부 원형을 모두 간직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건물을 되찾으려는 대한민국 정부와 재미 한인 사회, 언론 등 각계의 다양한 노력과 시도가 이어졌다. 문화재청은 이러한 재미 한인 사회와 사회 각계의 관심 속에 2012년 10월 문화유산국민신탁을 통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매입했다. 일제에 공사관을 빼앗긴 지 102년 만에 다시 소유권을 되찾아온 것이었다.

문화재청은 공사관 매입 이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위탁관리자로 지정(2013년 1월)해 정밀실측조사를 마쳤고(2013년 11월) 국내외 각종 문헌과 사진자료 등을 바탕으로 보수·복원 공사를 해 지난 3월 12일 최종 준공했다.오는 22일 오전 10시 30분(미국 동부 현지 시각)에 공사관의 문이 다시 열릴 예정이다. 개관식 날짜는 1882년 5월 22일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 날짜에 맞췄다. 태극기도 113년 만에 게양된다.

문화재청은 “공사관은 조선 후기 동북아시아의 구질서를 극복하고, 더 큰 외교적 지평을 열고자 했던 고종의 자강·자주외교 정신을 상징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현존하는 대한제국 외교공관을 통틀어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한 단독건물이란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도 매우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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