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이상적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 그린 두 연극 ‘킬롤로지’ ‘얼굴도둑’

 

플래시백 기법 사용

관객, 사건 맞춰가며 몰입

단순한 무대 세트 상징성 지녀

[천지일보=이혜림·지승연 기자] 가족을 돌아보게 되는 가정의 달 5월, 조금은 비극적이지만 주위에서 흔하게 볼 법한 가족 이야기 두 편이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다. 바로 연극 ‘킬롤로지’와 ‘얼굴도둑’이다. 극의 주제, 형식, 메시지 등이 닮은 듯 다른 두 작품을 비교·분석해봤다.

연극 ‘킬롤로지’ 중 ‘알란(김수현 분)’의 기억 속에서 눈을 뜬  ‘데이비(이주승 분)’(왼쪽), 연극 ‘얼굴도둑’에서 ‘엄마(성여진 분)’에게 용서를 구하는 ‘유한민(이지혜 분)’. (제공: 연극열전, 국립극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연극 ‘킬롤로지’ 중 ‘알란(김수현 분)’의 기억 속에서 눈을 뜬 ‘데이비(이주승 분)’(왼쪽), 연극 ‘얼굴도둑’에서 ‘엄마(성여진 분)’에게 용서를 구하는 ‘유한민(이지혜 분)’. (제공: 연극열전, 국립극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아들 외면한 아빠와 딸에 집착한 엄마

‘킬롤로지’는 아버지의 무관심이 아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입에 욕을 달고 사는 10대 소년 ‘데이비’는 살인게임 킬롤로지의 한 장면처럼 끔찍한 죽임을 당한다. 데이비의 아빠 ‘알란’은 아들을 잃은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사실 그는 데이비가 필요로 할 때에 옆에 있지 않았다. 데이비가 태어난 지 18개월 만에 아내와 이혼한 알란은 아들을 자주 찾지 않았다. 아들과의 추억은 데이비의 9살 생일에 강아지 ‘메이시’를 선물한 게 전부다.

게임 킬롤로지를 개발한 ‘폴’ 또한 아버지의 사랑에 결핍을 느끼며 자랐다. 폴은 기대치가 높은 아버지에게 늘 인정받지 못했다. 두려움은 도를 넘어 분노로 표출된다.

‘얼굴도둑’은 딸에 대한 엄마의 집착을 그린다. 작품의 주인공인 ‘유한민’은 로스쿨을 수석졸업하고 로펌에 다니던 변호사다. 어느 날 유한민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처참하게 죽고, 기억을 잃은 유한민의 ‘엄마’는 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려고 한다.

작품에서 얼굴은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개인의 자아·내면도 의미한다. 작가는 상대의 가치관·성향·행동 등을 자신의 구미에 맞게 바꾸려는 사람들을 얼굴도둑이라고 설정했다. 연극은 엄마의 욕심과 집착으로 인해 정작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어가는 딸을 보여주며 관객으로 하여금 타인에게 자신이 살고 싶은 얼굴을 강요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연극 ‘킬롤로지’에서 데이비의 살해장면을 함께 보는 ‘폴(김승대 분)’과 ‘알란(김수현 분)’(위), 연극 ‘얼굴도둑’에서 한 집에 모인 ‘점쟁이(주인영 분)’ ‘엄마(성여진 분)’ ‘형사(신안진 분)’. (제공: 연극열전, 국립극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연극 ‘킬롤로지’에서 데이비의 살해장면을 함께 보는 ‘폴(김승대 분)’과 ‘알란(김수현 분)’(위), 연극 ‘얼굴도둑’에서 한 집에 모인 ‘점쟁이(주인영 분)’ ‘엄마(성여진 분)’ ‘형사(신안진 분)’. (제공: 연극열전, 국립극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퍼즐을 맞춰라… 카타르시스 vs 몰입감

두 작품 모두 과거와 현재, 상상과 현실을 오가는 플래시백 기법을 활용해 흩어져 있는 이야기의 퍼즐을 맞춘다.

‘킬롤로지’의 등장인물은 단 세명이다. 데이비·알란·폴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긴 독백으로 관객에게 전한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연속성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각자의 이야기 속 교차점이 존재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긴가민가했던 부분들은 점차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고, 머리를 싸맸던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이와 반대로 ‘얼굴도둑’은 친절하게 이야기 풀어줘 극에 쉽게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유한민의 죽음에 가려진 진실은 엄마의 기억이 얼핏 돌아오는 순간마다 드러난다. 그의 회상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어느새 한숨짓고 눈물 흘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연극 ‘킬롤로지’에서 불안해하는 강아지 메이시를 다독이는 ‘데이비(장율 분)’(위), 연극 ‘얼굴도둑’에서 ‘엘리베이터 여자(황선화 분)’에게 안긴 ‘유한민(이지혜 분)’. (제공: 연극열전, 국립극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연극 ‘킬롤로지’에서 불안해하는 강아지 메이시를 다독이는 ‘데이비(장율 분)’(위), 연극 ‘얼굴도둑’에서 ‘엘리베이터 여자(황선화 분)’에게 안긴 ‘유한민(이지혜 분)’. (제공: 연극열전, 국립극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결핍 채워주는 ‘강아지’ ‘엘리베이터 여자’

두 주인공이 자신의 모습을 오롯이 드러낼 수 있는 존재는 하나뿐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방치 속에 자란 데이비에게 강아지 메이시는 자신 곁을 지켜주는 유일한 가족이었다. 데이비는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메이시의 따스함에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안정감을 얻고, 자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유한민에게는 ‘엘리베이터 여자’가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모든 사람의 얼굴이 엄마의 얼굴로 보여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엘리베이터 여자의 얼굴은 엄마의 얼굴로 변하지 않아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대화한다.

데이비와 유한민은 강아지와 엘리베이터 여자의 변화에 영향을 받아 행동을 한다. 그들에게 두 존재의 변화는 안정을 찾은 자신의 삶이 다시 흔들리는 큰 시련이기 때문이다.

연극 ‘킬롤로지’에서 게임은 게임일뿐 폭력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폴(이율 분)’(위), 연극 ‘얼굴도둑’에서 유한민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형사(신안진 분)’ ‘엄마(성여진 분)’ ‘남자친구(이호철 분)’ ‘점쟁이(주인영 분)’. (제공: 연극열전, 국립극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연극 ‘킬롤로지’에서 게임은 게임일뿐 폭력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폴(이율 분)’(위), 연극 ‘얼굴도둑’에서 유한민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형사(신안진 분)’ ‘엄마(성여진 분)’ ‘남자친구(이호철 분)’ ‘점쟁이(주인영 분)’. (제공: 연극열전, 국립극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8

◆단순한 무대에 감춰진 상징성

두개의 층으로 나뉜 ‘킬롤로지’ 무대 위에는 널브러진 의자와 세개의 전신거울이 있다. 사다리꼴 모양의 ‘얼굴도둑’ 무대 정 가운데에는 잿빛 소파가 놓여있다. 소파 외에 모든 가구는 새하얗다. 단순한 무대 소품은 극을 이해하는데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킬롤로지’의 박선희 연출은 “무대 공간 자체가 데이비·알란·폴의 머릿속”이라며 “거울은 폴이 곧 데이비이고, 데이비가 폴이라는 메타포를 알려주는 장치다. 서로 안에 서로가 있다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은 미러링 기법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얼굴도둑’의 무대에 대해 박정희 연출은 “엄마의 악몽이라는 콘셉트를 살리기 위한 구성”이라며 “흰색 배경과 잿빛 소파는 각각 희미해지고 퇴색돼 가는 엄마의 기억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두 작품은 비이상적인 모습의 부자·모녀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가족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연극 ‘킬롤로지’는 오는 7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얼굴도둑’은 6월 3일까지 서울 용산구 백성희장민호 극장 무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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