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2018러시아월드컵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좀처럼 ‘월드컵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신문과 방송 등 언론들은 ‘D-30’에 맞춰 기획성 기사들을 내보냈으나 과거 월드컵 때와 견주어 보면 상당히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대한축구협회는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할 국가대표 엔트리 28명을 때 맞춰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는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자주 이용하는 단체 카톡에서 한 지인이 “김 박사, 6월에 러시아월드컵인데 우리나라는 기권했는가. 언론 방송은 이를 까먹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걱정 반, 우려 반의 질의를 보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 해가 시작되면 연초부터 축구팬은 물론 스포츠팬이 아닌 이들도 관심을 보이던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러시아월드컵이 찬밥 신세가 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정치, 경제, 스포츠적인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한반도의 정세변화와 침체된 경제상황, 최악의 조편성이다. 먼저 남북정상회담과 북 비핵화라는 한반도의 극적인 정세변화가 전례없이 정치, 사회분위기를 달구고 있다. 한국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극적인 만남을 가진 이후 한반도는 평화무드로 쾌속행진을 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 이어 북한의 한국계 미국인 인질 전격 석방,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6월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 예정 등 그동안 예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급속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남북한 관계는 월드컵 이상의 큰 감동과 흥분을 안겨주고 있다.
침체된 경제상황도 악재다. 최저소득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정부에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민생 경제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있다.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고, 소비시장이 위축되면서 경기 지표가 수년간 적신호를 켠 상태이다. 기업들은 월드컵이 임박하면 월드컵 특수를 노리고 광고 마케팅을 활발하게 펼쳤으나 경기가 위축된 탓인지 적극적인 활동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축구팬 입장에서는 사상 최악의 대진이 예상되는 이번 러시아월드컵의 한국 성적을 크게 우려하면서 관심이 많이 식은 기분이다. 스웨덴, 멕시코, 독일 등과 경기를 갖는 한국으로서는 1승을 건질 상대를 꼽기가 매우 힘들다. 전력적으로 한국을 앞서 있는데다 한국은 역대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 공식 국제경기에서 세 나라에게 단 1승을 올린 적도 없다는 사실이 이번 월드컵에서 얼마나 힘든 경기를 할 것인가를 미리 점쳐볼 수 있게 한다. 

한국 축구는 지난 수십년간 국가의 상징물로서 월드컵을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주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이후 한 번도 본선 진출을 놓친 적이 없는 한국 축구는 월드컵에서 항상 보다 나은 꿈을 갖고 도전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력적으로는 밀리더라도 정신력과 사기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 전사들의 자세로 강팀들과 맞서며 성장했다. 1994년 미국월드컵과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예선탈락의 아픔을 겪기도 했던 한국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의 탁월한 리더십과 선수들의 단합된 힘으로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국민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박지성을 주축으로 해외원정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오르기도 했다. 

4년 전인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홍명보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이후 한국 축구는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한국은 이번 러시아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도중하차하고 신태용 감독이 막판에 대표팀을 맡게 되는 등 악전고투를 겪으며 어렵게 본선진출권을 따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평상심을 갖고 최악의 성적도 담담히 받아들인다는 마음으로 대표 선수들이나 국민들이 월드컵을 즐기며 한층 성숙된 자세를 보였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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