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요모조모] 전세보증금 사기와 국가 그리고 정치
[세상 요모조모] 전세보증금 사기와 국가 그리고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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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한국 사회에서 서민에게 ‘돈’은 곧 생명이다. 돈 많은 사람에게도 돈은 중요하겠지만 돈이 적은 사람에게 돈은 삶의 기초이자 ‘마지막 비빌 언덕’이다. 특히 전세 또는 반전세 사는 사람에게 보증금으로 쓰이는 돈은 목숨과 같다. 보증금 규모에 따라 집의 평수와 위치, 모양과 시설이 달라진다. 지상 거주, 지하 거주 또는 옥탑 거주가 결정된다. 

전세, 반전세 보증금이 위험하다. 사실은 위험한 지가 오래 됐다. 한 경매업체에서 낸 통계를 보면 보증금을 떼이는 세입자 세대는 수도권에서만 연 평균 6000세대에 이른다. 전국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국가는 통계조차 내놓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국가가 실태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에 언론에 크게 보도된 서울 당산동 사례는 충격 그 자체다. 원룸 3개동에 전세를 든 140가구가 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직면했다. 보증금을 합치면 100억원이 넘는다. 세입자들이 나서서 이곳저곳 호소하고 청와대 청원도 넣고 나서야 일부 매체에 보도됐다. 규모도 규모이지만 주로 사회초년생이 피해를 입었고 독거노인도 포함돼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주거 관련 법률에 어둡다는 것이다. 

한국엔 전세제도가 있어 전세금 보호가 중요함에도 국가가 교육을 하지 않는다. 초중고교에서 주거교육 하는 거 본 사람 있나? 보증금 보호 방법에 대해서도 교육하지 않는다. 절반에 이르는 학생이 세입자가 될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세입자가 되지 않을 운명을 타고 태어난 학생들도 주거권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남의 권리를 나의 권리처럼 소중히 여기는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하다. 이들 가운데는 건물주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입자의 주거권을 존중하는 교육이 필요하고 임대인의 책임과 윤리에 대해서도 교육해야 한다.  

‘당산동 140가구 보증금 사건’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어떻게 해서 보증금을 떼어 먹는지, 어떻게 해야 안 당하는지, 어떻게 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례다. 사기 유형이 두 가지다. 140명 가운데 110명이 함정에 빠진 이유부터 들여다보자. 전세를 알아보러 부동산에 갔을 때 중개업자가 신탁회사 명의로 되어 있는 ‘공문’을 보여주면서 안심시켰다.

이른바 ‘공문’에는 신택회사 대표의 신상이 자세히 나와 있고 직인도 찍혀 있었다. 공문에 나와 있는 문구는 전세보증금은 앞서 설정된 담보권에 우선해 보호하는 것처럼 쓰여 있다. 법률적으로 따질 때 공문 내용은 매우 까다롭게 기록돼 있었다. 사회 경험이 적은 세입자들이 짧은 시간 안에 함정을 찾아내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현재 신탁회사는 부동산 중개업자가 자신에게 세입자 명부를 전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며 보증금을 내줄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건물주는 구속됐고 부동산 중개업자는 도주했다.    

나머지 30가구는 어떻게 당했을까. 보증금 6000~7000만원을 300~700만원으로 낮춘 계약서를 만든 뒤 신탁회사에 넘기는 수법을 쓰는 바람에 나머지 금액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게 됐다. 액수를 낮춘 허위 계약서를 만든 이유는 대출을 많이 받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임대인이 신탁회사를 끼고 대출 사기를 벌이는 걸 알 수 있었음에도 금융사가 대출을 실행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일고 있다. 

당산동에 또 다른 전세 사기사건이 터졌다. 앞서 말한 140가구 사기 사건을 일으킨 건물주가 소유한 주택으로 알려졌다. 모두 50세대가 당했다. 세입자들은 임대인이 부동산 중개업자를 이용해 사기를 친 것으로 보고 있다. 연장계약 또는 신규계약을 체결하면서 2016년 8월까지 근저당 문제를 모두 해결할 것이라는 내용의 ‘확인서’를 써 주었다. 

확인서에는 임대인 신상이 적혀 있었고 도장도 찍혀 있었다. 임대인의 인감 첨부와 위임장도 없이 중개사무소의 대표가 임의로 작성한 서류였지만 법률을 잘 모르는 세입자들은 속수무책 당했다. 임대인의 인감이 첨부됐다 하더라도 ‘확인서’는 선순위 근저당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보증금을 50명이 떼이든 140명이 떼이든 한해 6000가구가 떼이든 정부의 기관 또는 인물 가운데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다.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전세보증금 문제는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고 사인 간에 알아서 할 영역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국가는 왜 존재하나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생 외치지 않는 정당이 없다. 민생 말하지 않는 정치인이 없다. 민생 하면 정치인이든 정당이든 모두 일가견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 특히 보다 가난한 사람들, 보다 힘이 적은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민생을 외치는 건 ‘민생’이라는 좋은 이미지만 차용하는 ‘민생 팔이’밖에 안 된다. 민생을 외치려거든 전세, 반전세 보증금 보호책부터 내어 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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