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모스크바 기행 - 마르크스 동상과 레닌 묘
[역사이야기] 모스크바 기행 - 마르크스 동상과 레닌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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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4월 21일 아침에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구경에 나섰다. 볼쇼이 극장 맞은편에 버스가 멈췄다. 이곳에 카를 마르크스(1818~1883) 동상이 있다. 세기의 변혁자 마르크스! 프로이센(독일) 태생, 1848년에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후 추방당해 영국에 거주, 가난에 시달리면서 두 아이를 잃고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의 지원을 받으면서 대영도서관에 출근해 ‘자본론’을 집필하고 런던에서 별세. 

특히 ‘공산당 선언’은 압권이다. 1848년 2월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함께 런던에서 ‘공산주의자동맹’의 강령 형태로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머리말과 4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머리말은 “유럽에는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그것은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다”로 시작해 “공산주의는 이미 유럽의 모든 세력들에게서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1장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역사를 되돌아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 불가피론을 역설한다. 특히 1장의 첫 문장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는 단순명쾌하나 논란이 많다.

4장 ‘현존하는 여러 반정부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입장’의 마지막을 읽어보자.

“지배 계급으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전율케 하라! 프롤레타리아트는 이 혁명을 통해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이 손에 쥐게 될 것은 세계 전체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이 구호는 세계 노동절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인데, 마르크스의 묘비에 적혀 있단다. 

마르크스 동상을 보고나서 10분 정도 걸어가니 모스크바의 심장부 붉은 광장이 나온다. 붉은 광장은 크렘린 성벽과 맞닿아있는데, 바실리 대성당과 굼 백화점 그리고 레닌 묘가 있다. 

레닌 묘는 10시부터 개방한다. 그런데 참배객 줄을 보니 한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될 것 같아 묘 입구에서 사진 촬영만 하고 바실리 성당으로 향했다.    

레닌(1870∼1924)은 러시아 공산당을 창설한 소련 최초의 국가원수이다. 그는 17세인 1887년에 맏형 알렉산드르가 알렉산드르 3세의 암살음모에 연루돼 처형당하자, ‘자본론’ 등을 탐독하고 마르크스주의자가 됐다. 레닌은 곧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핵심인물이 됐고, 1917년 11월 볼셰비키 혁명을 이끌어 정권을 잡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마르크스가 주장한 자본주의 붕괴와 노동자 혁명은 산업혁명의 본산지 영국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농노(農奴)가 대부분인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났다.   

하지만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72년 후인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0년에 독일이 통일됐다. 1991년 12월에는 소비에트 연합이 붕괴됐고, ‘프라하의 봄’ 등으로 동유럽은 민주화의 길을 걸었다.  

5월 5일, 마르크스 탄생 200년을 맞이해 세계 곳곳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마르크스의 고향 독일 트리어에는 중국이 선물한 거대한 동상이 세워졌는데 찬반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마르크스는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보다는 시진핑 체제가 견고해진 중국에서 더 극찬 받고 있다.   

마르크스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는 종언을 고했지만, 노동의 소외 등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지금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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