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지금, 행복하십니까? 

이 물음에 자신 있게, 아 그럼요 행복하고 말구요, 하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물론, 생각지도 않았던 벼슬자리에 오르거나 별 노력 없이도 돈뭉치가 굴러들어와, 그래서 복에 겨워 자지러질 것 같다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그들만의 리그에서 저희들끼리 희희낙락하는 소수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울해 보인다. 집단 우울증이다.

2009년, 지구상에서 제일 잘 산다는 나라들 모임인 OECD 국가 30개 중에서 자살률 1위는 대한민국이었다. 김연아의 세계 피겨여왕 등극, 월드컵 최초 원정 16강 진출, 삼성전자의 유례없는 실적 등 화려한 대한민국의 성적표 이면에 국민들을 자살로 내모는 모진 현실이 감춰져 있다.

코미디 프로에서 개그맨이 온 몸을 던져가며 “행복하다”고 외쳐대는 것은, 행복하지 못한 우리들 현실에 대한 서글픈 풍자일 뿐이다.   

무엇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가. 무엇 때문에 우리들은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 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히 내리고, 그리운 이의 인적은 끊어져 거의 일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옛 궁성, 그 고궁의 벽에서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 “아아쎄여, 내 너를 사랑하노라” 하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 있는 것을 볼 때.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가 발견될 때. 그 곳에 씌었으되,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으로 인해서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샜는지 모른다….”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어린 장난, 아니면 거짓말, 아니면 연애 사건이었을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러나, 아버지는 그 때문에 가슴을 태우며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동물원에 잡힌 호랑이의 불안, 초조가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을 왔다 갔다 하는 그 동물의 번쩍이는 눈, 무서운 분노, 괴로움에 찬 포효. 앞발에 서린 끝없는 절망감. 미친 듯한 순환.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 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하였을 때, 그리하여 그가 이제는 우러러 볼 만한 고관대작의 지위로서, 혹은 돈이 많은 기업주의 몸으로서,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달갑지 않은 태도로 날 알아보려고 하지 않으려 할 때….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는다. 우리들 중, 누가 ‘동물원에 잡힌 호랑이’이며, 누가 또 ‘옛 친구’였으나 지금은 ‘달갑지 않은 태도로 날 알아보려 하지 않으려’ 하는 ‘고관대작’이나 ‘돈이 많은 기업주’인가.

 그의 글에서처럼,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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