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페스트’ 홍보사진. (제공: 국립극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5
연극 ‘페스트’ 홍보사진. (제공: 국립극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5

국립극단 2018 세계고전 시리즈 두번째 作

원작,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동명 소설

한 무대서 두명의 배우가 하나의 역할 연기

박근형 연출, ‘블랙리스트’ 도화선 된 인물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국립극단이 프란츠 카프카의 ‘성’에 이어 프랑스 극작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세계고전 시리즈 두번째 작품으로 무대에 올린다. 연극은 오는 18일부터 6월 10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소설 ‘페스트’는 알제리의 도시 오랑(Oran)에서 급작스럽게 닥친 전염병 페스트의 확산과 이를 이겨낸 시민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폐쇄된 도시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전염병으로 인해 극한의 절망과 마주한 인간의 모습을 묘사해 문학계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걸작’으로 꼽힌다.

작품의 내용은 이렇다. 바람이 많이 부는 섬에서 근무하는 의사 ‘리유’는 진찰실을 나서다 피를 토하고 죽어있는 쥐 한 마리를 목격한다. 죽은 쥐의 수는 급격히 늘어가고 며칠 만에 수만의 쥐 사체가 섬을 뒤덮는다. 이상 증세는 섬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난다. 사람들은 비슷한 증세의 열병을 앓으며 죽어가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도지사’는 섬을 고립시키라고 명령한다.

연극 ‘페스트’ 홍보사진. (제공: 국립극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5
연극 ‘페스트’ 홍보사진. (제공: 국립극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5

연극은 원작과 그 결을 같이한다. 여기에 한국 관객의 위화감을 줄이도록 연출가 박근형의 각색이 더해졌다. 박 연출은 한반도를 본 따 배경을 설정하고, 대본 곳곳에 ‘미세먼지’ ‘혼밥’ 등 현재 우리 사회를 나타낼 수 있는 단어를 넣었다.

또한 한 역할을 두명의 배우가 동시에 수행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 ‘리유’는 사건 속에 있는 인물이자 상황을 설명하는 내레이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극 중 인물인 의사 ‘리유’와 페스트 사태를 회상하는 내레이터 ‘리유’가 분리돼 한 무대 위에서 연기를 이어간다. 의사 리유는 배우 임준식이, 내레이터 리유는 배우 이찬우가 연기한다.

작품에 대해 박 연출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자기 위치에서 묵묵히 수행했던 오랑의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공감한다”며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인간에 대한 연민 하나로 불안과 공포의 시대를 헤쳐 가는, 말없이 묵묵한 사람들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연극 ‘페스트’ 박근형 연출. (제공: 국립극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5
연극 ‘페스트’ 박근형 연출. (제공: 국립극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5

한편 이번 연극을 연출한 박근형 연출은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시초가 된 인물이다. 박 연출은 2013년 국립극단에 연극 ‘개구리’를 올렸다. 당시 일각에서 ‘연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미화하고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후 박 연출은 각종 정부 지원에서 배제됐으며 국립극단에 작품을 올리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국립극단은 지난 14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에서 발표한 최종 조사 결과에 따라 사과문을 발표한다”며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국립극단의 사과문 전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지난 8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서 블랙리스트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것처럼 ‘개구리(2013)’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후, 발표된 바와 같이 여러 작품에 걸쳐 부당한 지시, 외압, 검열이 지속되었고, 국립극단은 이를 실행하는 큰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으로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조사결과 발표 직후 피해자 분들께 개별적인 사과를 드리고 있으며 아직 뵙지 못한 분들께도 조속한 시일 내에 직접 사과드리겠습니다.

이제 국립극단은 어떠한 외부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신 있게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다시는 국립극단에서 차별 및 배제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립극단은 신임 예술감독 취임 이후 현장 연극인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다양한 간담회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또한 공연 제작 과정 중 투명한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각 분야별 자문위원회를 운영 중입니다. 블랙리스트 사태로 인해 좌절을 느끼신 연극인들이 다시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현장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겠습니다.

국립극단으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연극인들과 실망을 느끼고 계실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연극 ‘페스트’ 포스터. (제공: 국립극단)
연극 ‘페스트’ 포스터. (제공: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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