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기 마련입니다”

▲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사무처장 혜문스님은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올해 일본 궁내청에 소장됐던 의궤를 환수하게 돼 의미가 남다르다고 전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조선왕실의궤’ 81종 167책이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날이 머지않았다. 88년이라는 긴 세월을 외지 그것도 조선을 강제로 침탈한 일본의 심장부에서 억눌려있던 의궤가 반환되기까지는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조선왕실의궤환수위 등 민간단체의 노력이 컸다.

이에 의궤 환수와 관련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사무처장 혜문스님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올해가 아니면 일본 궁내청에 소장 중인 조선왕실의궤를 되찾아올 기회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조선왕실의궤 반환은 지난 5월 명성황후 접견실에 깔려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표범 카펫의 행방을 찾는 데도 중추적인 역할을 한 혜문스님이 이뤄낸 두 번째 쾌거라고 할 수 있다.

국보급 문화재를 찾는 데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는 말에 혜문스님은 “제가 한 것은 없습니다. 그저 우리 선조들의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는 데 조금 더 관심을 가졌을 뿐”이라며 “의궤를 환수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여러 민간단체와 일조협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본 공산당은 이번 의궤 환수 문제를 당론으로 채택할 정도로 관심을 갖고 도와줬으며, 도쿄에 있는 고려박물관과 조계종 중앙신도회 월정사 봉선사 등도 의궤 반환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어 혜문스님은 “이번 조선왕실의궤 환수와 관련, 일본 정부를 설득하는 데 있어 한일의원연맹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에 담화를 발표한 간 나오토 일본 총리와의 관계도 설명했다. 혜문스님은 “간 나오토 총리가 야당 의원으로 있던 시절부터 의궤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며 “환수위의 활동 범위 안에 있던 그가 이미 오래 전부터 의궤에 대해 숙지하고 있었던 것도 운으로 작용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23일 아사히신문에 보도된 조선왕실의궤 특집기사도 한몫했다. 보도가 나간 뒤 스님이 길을 지나면 일본인들이 ‘혹시 아사히신문에 나온 스님 아니냐’고 물어봤을 정도라고 하니 그 위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혜문스님은 “아사히신문은 일본 황태자를 비롯한 황실 인사들이 많이 본다고 한다”며 “특집기사로 다룬 만큼 일본 황실에서도 의궤 환수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으로 일본 국민들도 정신적인 충격에 빠졌을 거라고 말하는 스님은 “궁내청에 있는 물건이 에도성 밖으로 나간다는 것 자체가 일본인들에게는 충격일 것”이라고 말했다.

▲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사무처장 혜문스님 ⓒ천지일보(뉴스천지)
“일본에는 가미모노(神物) 즉 신물, 어물이라고 해서 물건들이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자기 스스로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이번에 의궤가 돌아왔다는 것은 이제 의궤가 자기가 있을 곳은 ‘조국의 품’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사건은 민간단체의 노력과 함께 문화재가 자기 스스로 제자리를 찾는 ‘때(時)’가 잘 맞물렸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혜문스님은 이번 사건을 통해 반성할 것이 있다며, “지금 일본에 남아있는 우리 문화재가 7만 점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정부는 그 목록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 목록에 대한 확실한 연구를 기반으로 적극적인 문화재 환수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궤를 반환 받기 위해 환수위에서는 4년을 준비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다른 문화재 목록을 찾아 돌려받기 위해 노력했다면 아마 이번 의궤 반환과 함께 그 문화재 또한 환수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스님은 더 많은 문화재를 환수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본이 가지고 있는 문화재 목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환수운동을 펼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그래서인지 스님은 “정부와 문화재 관련 단체들의 보다 적극적이고 발 빠른 움직임으로 유출 문화재 목록을 파악하고 있었더라면 간 총리가 담화를 발표할 때 ‘조선총독부의 기증 행위를 통해서 궁내청이 가지고 있는 조선왕실의궤 등을 인도하겠다’가 아니라 ‘조선왕실의궤’와 ‘무엇 무엇’이라는 확실한 목록이 언급됐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혜문스님은 “안타까운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일본이 왜 의궤를 주는가’라고 묻는다면 식민지 100년 즉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지 않을 수 없다”면서 “문화재 중에서 무엇인가를 줘야 하는데 우리가 요구한 품목이 의궤를 제외하고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혜문스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조선왕실의궤환수위 활동을 하면서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2010년 8월이면 의궤를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혜문스님은 이번 조선왕실의궤 환수와 관련, 1400일간의 여정과 과정을 담은 자료집을 출판해 제3세계 문화재 운동의 매뉴얼을 제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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