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바리공주 설화는 버려진 막내딸의 효행을 담은 것이다. 바리떼기라고도 불리는데 버린 아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전승 설화 가운데 가장 애틋한 딸 효행 스토리다. 

천성이 효녀인 바리공주는 부친이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치료약이 있다는 삼신산을 찾아 떠난다. 삼신산은 아무나 갈 수 없는 저승에 있다는 산. 공주는 괴물처럼 생긴 장승을 신랑으로 삼아 온갖 고초 끝에 결국 신비의 약을 구했다. 아버지는 딸을 버린 것을 후회하며 이렇게 감탄하는 것이다. 

- 어허, 이 아비가 못다 한 일을 네가 하는구나/ 나는 이승을 다스리는데 너는 저승을 다스리는구나/ 아니, 이승과 저승의 멋진 다리 노릇을 하는구나/ 나는 힘과 재물로 세상을 다스리는데/ 너는 사랑과 자비와 윤리 도덕과 효성, 바로 인간됨 그 하나로 이 우주를 감동시키는구나…(하략) -

심청도 자신을 길러 준 아버지 심봉사를 위해 살신효행을 실천하지 않는가. 부처님 앞에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면 눈을 뜨게 해준다는 스님의 얘길 듣고 선원들에게 팔려가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 

부모를 생각하는 정은 아들보다 딸이 더 애틋하다고 한다. 신라 지은 설화도 효녀 효성을 담은 것이다. 지은은 신라 서라벌 동쪽 분황사 인근마을에 사는 나이 많은 처녀였다. 그녀는 아버지를 여의고 장님인 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어머니 봉양으로 서른둘이 되도록 시집을 가지 못했다. 어느 해 흉년이 들어 품팔이도 어렵게 됐다. 

딸은 할 수 없이 부잣집에 팔려가 노비가 됐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어머니는 차라리 목숨을 끊자고 하며 딸을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모녀의 울음이 얼마나 슬프게 들렸는지 마침 지나가던 화랑 효종랑의 무리들이 들었다. 효종랑은 모녀를 불쌍히 여겨 낭도들과 합심해 부조했다. 

서라벌 사람들은 지은이가 사는 마을에 붉은 대문을 세우고 마을 이름을 ‘효양리’라고 했다. 효녀 지은은 후에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양존사(兩尊寺)를 세웠다. 선조 때 학자 미암(眉巖) 유희춘은 자신의 일기에다 부인 자랑을 침이 마르도록 했다. 19년간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부인은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살았으며 3년상을 홀로 치렀다. 미암은 부인을 당나라 때 효성으로 뛰어난 ‘상곡부인(上谷夫人)’에 견주기도 했다. 

사대부가는 어린 딸에게 효행과 부덕을 가르쳤다. 부모은중경은 불교경전이면서 유가에서 존중을 받은 책이다. 한글로 해석을 달고 삽화까지 넣은 것은 바로 어린 소녀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임금의 명으로 국가가 담당했다. 

시집가는 딸에게 계녀서(戒女書)를 써 주면서 부덕을 실천하라고 했던 거유 송시열의 첫 번째 당부는 바로 효성이었다. 조선이 동방예의지국으로 빛을 발했던 것은 바로 어린 시절부터 자녀를 상대로 철저하게 시행했던 효 교육 때문이다.   

한국은 ‘효국(孝國)’의 지위를 잃어버린 것 같다. 최근 5년 사이 부모 등 존속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2배나 증가했다.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존속 범죄 건수는 2012년 956건에서 작년에는 1962건으로 5년 사이에 2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가해자 10명 중 4명은 아들이라고 한다. 딸이 아들보다 낫다고 하는 시속어는 이를 두고 생긴 말인가. 

존속 범죄는 천륜을 버린 죄악이다. 무너져가는 가정과 사회 윤리를 회복시킬 대책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어버이날을 맞아 ‘효도하는 정부’ 공약을 다시 확인했다. 효행실천의 역사현장을 정비해 교육장화 해야 한다. 무엇보다 초등학교부터 윤리 교육을 정규과목으로 채택하는 일대 개혁을 단행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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