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북한의 비핵화를 결정지을 북미정상회담의 날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현재 분위기는 분명 나쁘지 않다. 김정은은 아버지보다 기세등등해 보였다. 매력을 풍겼으며 언론 앞에서도 자연스러웠다. 그가 이전 합의의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유감을 표시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은둔했던 아버지에 비해 훨씬 대담했다. 북한 지도자가 판문점 MDL을 넘어 한국 땅에 발을 디딘 것은 그가 처음이었고 공동 기자회견까지 한 것은 정상국가 지도자다운 자세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이 과연 실행될 수 있을까. 이는 상당한 비용을 수반할 것이다. 공동 선언문에는 낙후된 북한 철도 시설 현대화를 비롯해 2007년 선언문에 있었지만 이행하지 못한 안변·남포 조선 협력단지 건설 등이 담겨 있다.    

이번 판문점 선언 이행은 2007년과 다른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첫째는 2007년 이후 유엔 안보리가 지속해서 북한 경제를 압박하는 일련의 제재 조치를 통과시켜 왔다는 점이다. 유엔 제재를 위반하지 않고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두 번째는 비핵화다. 이번 선언문 내용은 북한의 첫 핵실험이 있고 1년 후에 이뤄진 2007년 정상회담의 이슈였다. 북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는 이후 6번의 핵실험을 거치며 훨씬 고조됐다. 

두 문제는 서로 연결돼 있다. 판문점 선언은 대체로 남북 관계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은 모든 초점이 비핵화에 맞춰질 것이다. 유엔 제재 문제는 북·미 간 비핵화 논의 결과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비핵화 협상이 좌절돼 미국이 최고 수준의 대북 경제 압박을 요구하고 나설 경우 문 대통령은 대규모 자금 지원이 수반되는 판문점 선언 실행에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 북한은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 개선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이산가족 상봉, 군사 회담, 재래식 병력 감축 논의, 사회문화 교류 같은 ‘선물 보따리’를 준비해 놓았다. 그런데 북·미 간 비핵화 논의가 진통을 겪으면 이를 모두 거둬들이면서 문 대통령에게 미국의 입장을 누그러뜨려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판문점 회담에서 거둔 성과를 잃게 될 것이란 압박 카드를 들이밀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남북 간 판문점 회담이 북미정상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판문점 선언문에 따르면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고 명시했다. 과거 선언문과 달리 “우리 스스로”가 아니었다. 이는 미국이 환영할 만한 대목이다. 반면 선언문에 적힌 ‘핵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은 미국의 우려를 낳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북한에서 핵무기를 없앤다는 의미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 외부로부터의 핵 공격 위협을 없앤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핵 공격 능력을 갖춘 미국에 대해서도 비핵화를 요구한 것이다. 물론 불가능한 요구다. 하지만 이런 표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회담 날짜와 장소가 이미 정해졌다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진정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평양을 방문한 폼페이오 장관을 안심시켰기 때문이다. 백악관이 만족할 만하고 실행 가능한 거래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북한은 국제 전문가들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심지어 북한은 지난주 풍계리 핵실험장의 전선마저 철수했다.

그럼에도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회담이 열린다고 해서 성공을 장담할 수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차례나 자신이 회담장에서 퇴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실행 불가능한 안보 보장을 요구하는 바람에 협상을 망칠 수 있다. 더구나 북·미 회담에서 중국이 반대하는 결과물이 나온다면 중국은 자국의 이익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면 북한에 협상 중단을 요구할 수도 있다. 아마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주 평양을 방문했을 때 혹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평양에서 김 위원장을 만난다면 전달할 메시지일 것이다. 북한의 과거 협상 전력은 냉소를 불러일으킨다. 그간 북한의 외교적 ‘불꽃놀이’는 한·미 동맹을 약화하고 한국으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유엔 제재 이행을 약화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진정 김정은이 협상을 하기로 결정하고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에 나선 것이라면 이번 시도는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모든 진실은 머지않아 뚜껑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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