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사)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지난 5월 1일 노동자의 날에 민주노총 부산본부 및 시민단체 관계자 3000여명이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세우려다 경찰의 제지로 계획보다 30미터 떨어진 곳에 노동자상을 세웠다. 이보다 앞서 지난 4월 3일 노동자상 건립특별위원회는 ‘평화의 소녀상’을 일본영사관 앞에 세웠던 것처럼 강제징용노동자상도 그곳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어, 앞으로 이 노동자상의 이전 설치에 대한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상태이다. 

한편 2017년 8월 12일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추진위원회’는 용산역 광장에서 강제징용노동자상 제막식을 열고 “일제강점기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이곳 용산역에 끌려와 일본 국내는 물론, 사할린, 남양군도, 쿠릴열도 등지의 광산, 군수공장 현장에 끌려가 노동력을 착취당했다”고 밝혔다. 이날 제막식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100세)는 조선의 젊은이들을 강제로 징용해 노동력을 착취한 일본이 아직까지 한마디 언급도 없고, 제대로 사죄하지도 않고 있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용산역과 부산역은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용산역은 전국에서 강제로 징용된 노동자들의 집결지였으며, 부산역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눈물을 뿌리며 고향땅을 떠나던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 최근의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치를 위해 220여개의 시민단체와 1만명 이상의 시민이 모금에 참여했다고 하니 이는 진정으로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준 좋은 본보기라고 아니할 수 없다.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는 1930년대 말부터 1945년까지 일제에 의해 징용되거나, 직장알선이라는 허위 선전에 속아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을 말하는데, 이들의 숫자는 10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강제징용은 1938년 국가총동원령이 시행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1941년에는 군사적 목적 외에도 민간공장에도 적용할 수 있게 법령이 개정됐다. 한편 일본 후생성은 1944년 8월 ‘여자정신대근무령’을 공포하고 12~40세까지의 조선여성들을 강제로 징집했는데, 이들 중 다수는 위안부가 됐다. 이들 노동자들은 하루 15~16시간의 강제노동에 시달렸으며, 임금도 당시 일본인 평균 일당인 4엔의 절반 수준 이하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가 일단락됐다고 기존의 입장만을 고집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남북관계가 풀리면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과 미쓰비시 등 일본 회사들 사이의 개인청구권문제를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관련 시민단체와 피해 할머니들이 오랜 기간 싸워왔기 때문에 많이 알려졌지만,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문제는 잘 알려지지도 못했다. 일본이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에 대해 진정한 사과와 보상을 할 때까지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 노력과 국민들의 폭넓은 성원과 참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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