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방관이 2일 오전 여성 구급대원 강연희 소방경의 영결식이 열리기 전 전북 익산소방서 분향소에서 분향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한 소방관이 2일 오전 여성 구급대원 강연희 소방경의 영결식이 열리기 전 전북 익산소방서 분향소에서 분향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구조 업무 중 폭행 피해 4년 새 2배 이상 증가

소방청, 구급대원 보호장비 소지 방안 검토 중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신고를 받고 출동하게 되면 주취자가 많아요. 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저희는 그냥 맞거나 CCTV에 그 화면을 담아서 신고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맞아도 대처가 어렵습니다.”

4일 익명을 요구한 충북의 한 소방서 구급대원 A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같은 소방관으로서 이번 사건에 특히 공감이 더 많이 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술에 취해 길에 쓰러진 시민을 구하려던 여성 구급대원이 주취자에게 폭행당해 뇌출혈로 사망했다. 폭언과 폭행 등에 노출된 구급대원들의 열악한 상황은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에 구급대원의 ‘인권사각지대’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지난달 2일 오후 1시쯤 구급대원 강연희(51, 여)씨는 전북 익산시 평화동 익산역 앞 도로변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있던 윤모(47)씨를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출동했다. 그러나 구조 과정에서 의식을 찾은 윤씨는 옆에 있던 강씨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손으로 강씨의 머리를 5~6차례 가격했다.

강씨는 같은 달 5일 어지럼증과 경련, 심한 딸꾹질 등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자율신경 손상’ 진단을 받았다. 결국 지난달 24일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던 중 1일 사망했다.

이는 비단 강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일 제주도에서도 여성 구급대원이 119구급차 안에서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술에 취해 두통 등을 호소하며 119에 구조 요청을 한 최모(31, 여)씨는 병원으로 향하던 구급차 안에서 구급대원 김모(28)씨에게 폭언을 하고 옆에 있던 구급 장비를 던졌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왼쪽 손목에 찰과상을 입고 구급 장비 일부가 파손됐다.

이 같이 구급대원을 대상으로 한 폭언·폭행 사건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에 따르면 소방관들이 구조·구급 업무 중 폭행·폭언 피해를 본 사례는 4년 새 2배 이상 늘었다. 최근 5년 7개월간 해당 건수는 870건에 달한다.

특히 술에 취한 환자에게 외상이 있으면 이송을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돼있기 때문에 구급대원들은 난동을 부리고 폭언·폭행을 하는 환자를 제압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러하지만 사실상 처벌은 미비하다.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이 소방청의 ‘구급대원 폭행 및 처분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 2014년부터 2017년 7월까지 구급대원 폭행사범 622명 중 314명은 벌금형 이하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구급대원들은 이 같은 구급대원 폭언·폭행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력 충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은호 충북 증평소방서 예방안전팀장은 “원래 구급차는 3명이 타게끔 규정돼있지만, 대다수 소방서가 현재 인력이 부족해 2명만 타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개 여자 구급대원이 환자와 함께 있게 되는데 이 가운데서 사고가 터지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구급대원 인력 충원 등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며 “취객 등으로 인해 경찰에 지원 요청을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시 경찰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소방청은 이번 구급대원 폭행 사망 사건과 관련해 재발 방지 차원으로 구급대원들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를 소지하고 유사 시 이를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아울러 폭력 행위자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의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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