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한반도에 ‘어쩌면’ 엄청난 변화가 몰아칠 가능성이 가시화 되고 있다. 분단 이후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 만큼의‘한반도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어쩌면’이라고 단서를 붙인 것은 그 결정적 변수가 북미관계에 달려 있으니 우리가 풀어 낼 수 없는 측면도 많기 때문이다. 쉽게 믿기엔 진정성이 떨어졌던 북한 김정은 정권, 하루아침에 돌변할 수 있는 미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를 염두에 뒀을 때도 아직은 더 냉철하게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세는 전향적이고 희망적이다.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더 강력한 남북관계, 북미관계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듯하다. 말 그대로 한반도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단순한 화해와 협력의 수준이 아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를 완전히 철폐하는 동시에 평화체제 구축에 이어 북미, 북일 국교 정상화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비무장지대(DMZ)의 생산적 활용과 대량살상무기 감축 등의 논의도 급물살을 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 아직도 당리당략인가

모두가 지켜본 남북정상회담은 한마디로 감동적이었다. 예상보다 더 강력한 의지를 보였던 김정은 위원장, 예상보다 더 치밀하게 내실을 준비했던 문재인 대통령, ‘판문점 회담’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핵심 동력이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국민적 관심도 놀랄 만큼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신경제지도와 관련된 자료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달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통일한국’의 미래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벌써 경기 북부 등의 땅값까지 들썩인다는 얘기는 부동산 업자들의 장삿속으로만 치부할 일도 아니다. 기존의 냉전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세계 각국의 여론도 판문점에서 냉전체제의 피날레가 장식되느냐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미국만 따라다니며 대북 압박에 나섰던 일본 아베 정권의 변신은 사실 초라하다. 오히려 대북 강경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던 미국 의회의 태도 변화가 압권이라 할 만하다.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외교 행보를 지지한다는 초당적 결의안이 미 하원에서 발의됐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초당적 결의안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당 소속 툴시 가버드 의원과 하원 외교위원회 아태소위원장인 공화당 테드 요호 의원이 발의한 것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미국민의 평가는 사실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북 강경쟁책을 주도했던 공화당과 중간선거에서 맞서 싸워야 할 민주당이 초당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여야 각 정당의 셈법도, 선거지형의 판세도 다를 것이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북핵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힘을 실어준 미국 의회의 결단은 결국 평화와 정의 그리고 국익 앞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정작 한국 의회의 사정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을 놓고 근거 없는 의심을 보내는가 하면 ‘주사파와 김정은의 합의’라며 매도하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발언은 실망을 넘어 절망에 가깝다. 판문점 선언을 국회에서 비준하자는데도 자유한국당은 반대하고 있다. ‘대못박기’라며 동의할 수 없다는 자세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동의할 수 없다면 그 정치세력의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국민만이 아니라 미국민도 원했던 한반도 비핵화, 그 목표가 현실화되는 쪽으로 나아가자 직전까지도 싸웠던 미국 여야가 한목소리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은 그저 부럽기만 하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왜 이런 모습이 없는 것일까. 미국도 우리처럼 대통령제 국가이다. 미국도 북한과 사실상 대치해 왔던 나라이며 전쟁의 참상을 잘 아는 국가이다. 미국도 큰 선거를 앞두고 있으며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되고 우리는 안 되는 그 이유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심지어 홍준표 대표는 지금도 ‘빨갱이’ 타령이나 하면서 색깔론으로 한국정치를 오염시키고 있다. 냉전체제의 피날레가 예고되는 이 시점에서 빨갱이 타령이나 하는 지도자가 어찌 미래를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홍준표 대표의 시대착오적 발언도 나름 계산을 한 뒤의 작심 발언이라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당리당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제1야당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동력을 상실한 거대정당의 대표로서 무엇인가를 붙잡고 지지층을 모으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할 상황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홍 대표는 그 수단을 ‘좌우 색깔론’으로 잡은 것이다. 주사파, 빨갱이에 더해서 다음 대통령은 김정은이 될 수도 있다는 식의 무차별적 색깔론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색깔론 프레임’이 한국 선거정치에는 지금도 통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는 통한 측면이 많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는 어떨까. 이젠 유권자가 답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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