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지쳤다 - 정진규
[마음이 머무는 시] 지쳤다 - 정진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쳤다

정진규(1939~2017)
 

지난여름 가뭄에 힘이 빠졌다. 지쳤다 꽃 필 철을 놓친 지가 오래다 꽃대가 솟을 때가 지난 지 너무 한참 되었다 연못이 생기가 없다 부끄러움으로 이파리만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 쇈 것의 손목을 어찌 잡겠는가 혼기(婚期)를 놓쳤다 과년한 딸을 둔, 기다리다가 주저앉은 나도 부끄럽다
 

[시평]

봄, 그리고 여름이 오기까지 우리나라의 날씨는 대체로 가물 때가 많다. 비가 너무나 오지를 않아, 논에 모를 내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밭작물까지 말라죽어, 농부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가 더러 있다. 가뭄이 심해서 하천이란 하천은 모두 메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제법 크다는 저수지들도 바닥을 드러내는 때가 몇 년에 한 번씩은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찔레꽃이 빗방울을 세 번 맞으면, 그 해는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찔레꽃이 필 무렵인 오월 달에 찔레꽃에 빗방울이 세 번이나 떨어질 만큼 비가 많이 온다면, 그 해의 농사가 잘 된다는 의미이리라.

너무 가물어 꽃이 필 철을 놓쳐, 그저 이파리만 무성해지는 가뭄 중의 나무를 바라보며, 혼기를 놓친, 그래서 이제는 쇈 듯한, 그런 딸아이를 생각한다. 어쩐 일인지 요즘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하려고 한다. 특히 변변한 직업을 가진 여성일수록 혼자 사는 예가 많다. 부모들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언제나 저 아이가 결혼을 할 것인가. 어엿한 사내 한 놈 데리고 와서는, 아버지 사위감이예요 하고 넙죽 절할 날을 기다리고 기다려도, 그런 날은 오지를 않는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서 이제는 주저앉고 말았다. 주저앉아 생각하니 부모로서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한 듯하여, 참으로 부끄럽기가 짝이 없다. 연못이 그득한 물로 넘쳐나야 하는데, 가물어 생기가 없고, 그래서 꽃도 피우지 못하는 부끄러운 이파리만이 무성하듯이, 과년한 딸년을 바라보는 아비의 심정. 그 누가 알 것인가. 시 속에 그런 아비의 심정 절절하고나.

그 과년한 딸아이 남겨두고 이제 저 세상으로 떠난 시인의 그 마음 어떠하였을까. 이승의 일은 이제 그만 이승에 맡겨두시고 편히 쉬시오, 시인이시여. 이승에서 지쳤던 일, 모두 이제는 그만 접어놓으시고 편히 쉬시오.

윤석산(尹錫山)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