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유비는 현위 벼슬을 내놓은 뒤에 관우, 장비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그 놈의 벼슬을 내놓고 나니 어깨가 한결 홀가분하다.”

“진작 내놓으실 일이지 여태껏 가지고 계실 일입니까.”

현덕의 말에 관우가 맞장구를 쳤다. 장비가 끼어들었다.

“형님, 막상 고향으로 가자 했으나 어디 갈만한 곳이 있습니까?”

“대주 태수 유희가 사람이 좋다고 하니 우선 그곳으로 가보세.”

세 사람은 그 길로 안희현을 떠난 지 며칠 만에 대주에 도착했다. 관아로 가서 태수를 찾으니 유희가 달려 나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다 같은 한나라의 종실이었다. 정주 태수의 유비 체포령 공문이 대주에도 도착했으나 유희는 숨기고 있었다. 그는 성의를 다해 세 사람을 대접했다.

조정의 십상시들은 권력을 잡은 뒤에 횡포가 날로 심해지고 있었다. 그들이 의논을 한 것은 나라를 막다른 길로 내모는 일이었다.

“누구든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면 모조리 죽여 버리세.”

이 같은 결의를 한 뒤에 조충, 장양은 황건적을 섬멸한 장군들한테 황금과 비단을 내놓으라고 공공연히 요구했다. 그러나 성격이 강직한 주전과 황보숭은 내시들이 요구한 뇌물을 주지 않았다.

내시 조충과 장양은 황제한테 아뢰었다.

“주전과 황보숭은 태수의 자격이 없습니다. 벼슬을 거두어 버리시오.”

황제 영제는 내시들의 말을 곧이듣고 주전과 황보숭의 관직을 삭탈했다. 날이 갈수록 십상시들의 횡포는 불같이 일어났다. 일개 내시인 조충에게는 거기장군의 칭호를 내리고 나머지 장양의 무리 열세 사람은 모두 제후에 봉했다. 정치는 더욱 문란해지고 백성의 원망하는 소리는 한층 높아졌다. 지방 곳곳에서는 양민들의 반란이 다시 기승을 부렸다.

장사 땅에서는 구성이란 자가 일어나고 어양 땅에서는 장거와 장순이 반란을 일으켰다. 장거는 자칭 천자라 하고 장순은 대장군이 됐다. 파발은 각처에서 달렸다. 급함을 알리는 장계와 표장은 쉴 사이 없이 빗발을 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상시들은 숨기고 아뢰지 않았다.

하루는 후원에서 황제가 십상시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간의대부 유도는 황제 앞에 나가 통곡을 했다.

“경은 어인 일로 짐의 좋은 잔치에 하필 통곡을 하고 있는가?”

영제가 유도에게 물었다.

“나라는 아침이 아니면 저녁에 망하게 됐는데 폐하께서는 내시와 함께 잔치만 하고 계시니 어찌 통곡을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눈물을 씻으며 아뢰었다.

“나라가 위태롭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요새 같은 태평성세에 말이지.”

황제가 못마땅하여 눈을 흘기며 물었다.

“사방에서 도둑들이 일어나 주와 군의 성을 넘어 침략하고 있습니다. 모두 다 십상시가 매관매직으로 백성을 해롭게 하고 폐하를 기망해 조정의 충신들을 모조리 쫓아내었으니 이 모양이올시다. 그러니 나라가 망하지 않고 어찌 배겨나겠습니까. 지금 화는 바로 눈앞에 떨어졌는데 이것을 모르시니 통곡할 일이옵니다.”

간의대부 유도가 눈물로 간언하는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십상시들은 서로들 눈짓을 했다. 일제히 사모(紗帽)를 벗어놓고 황제 앞에 엎드려 아뢰었다.

“대신과 함께 뜻이 맞지 아니하니 신의 무리들은 살 방도가 없습니다. 원컨대 성명을 빌려 향리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저희들의 가산은 모조리 팔아서 군자금을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내시들은 말을 마치자 특유의 간특한 목소리로 일제히 소리내어 울었다.

영제는 크게 노해서 면전에서 유도를 꾸짖었다.

“네 집에도 부리는 하인이 있지 아니하냐? 천하의 제왕인 짐으로서 내시들과 술 한 잔도 못 마신단 말이냐? 어째서 너는 짐한테 그리 야박하게 구느냐? 여봐라. 저 놈을 당장 끌어내서 목을 베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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