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형제복지원 정문 모습. (출처: 블로그 캡처)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30
부산 형제복지원 정문 모습. (출처: 블로그 캡처)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30

수용인원 무려 3000여명 넘어… 고문과 살인 513명

‘형제복지지원재단’ 이름 바꿔 원장 일가족 운영

[천지일보 부산=김태현 기자] 박정희 정권 당시 거리의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참혹한 인권유린이 벌어졌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검찰이 나섰다.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이라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검찰이 다시 조사하기로 했다. 그동안 억울하게 당한 513명의 죽음의 진실이 밝혀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2일 검찰 등에 따르면 ‘대검 진상조사단’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비상상고’ 방안을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비상상고’는 이미 확정된 판결에 대한 오류를 수정해줄 것을 대법원에 직접 요청하는 것으로 이때 대법원은 일반 상고심 재판처럼 사건을 심리하게 된다. 판결에 대한 강력한 견제장치인 만큼 검찰총장만 가능하다.

조사단은 30년 전 대법원이 내린 ‘형제복지원 수용인 불법 감금 아니다’는 판결을 이끈 정부 훈령을 위헌으로 보고 ‘무죄’ 판결도 잘못이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겠다고 나섰다.

지난 1989년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은 업무상 횡령과 초지법 위반, 외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만 유죄로 인정받아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박 원장의 ‘형제원 사건’의 핵심인 인권유린 부분에 대해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또한 조사단은 지난 1975년~87년 12년간 수용자 513명의 목숨을 앗아간 복지원의 폭행·감금·성폭력 등의 불법 행위의 진실 규명은 물론 형제복지원의 생존피해자와 수용자의 유가족 등에 대해 피해 조사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또한 부산시청와 사상구청, 국가기록원 등에서 관련 기록물을 확보할 계획이다.

부산 형제복지원 수용소 내부 모습. (출처: 블로그 캡처)ⓒ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30
부산 형제복지원 수용소 내부 모습. (출처: 블로그 캡처)ⓒ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30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1987년 당시 부산 북구 주례동 산18번지에 위치한 형제 복지원은 전국 최대 규모의 부랑아(당시 걸일, 앵벌이, 껌팔이, 구두닦이 등) 수용시설인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인권 유린과 사망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5년, 국회 제정이 아닌 내무부 훈령 제410호(부랑아의 신고단속 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지침)를 근거로 부산시와 해당 형제복지원이 계약을 체결한 후(부랑인 수용 보호 위탁 계약)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정부가 길거리 부랑자와 은둔자들의 단속에 나선다는 명목으로 자행됐다.

이 같은 훈령 명목으로 당시 경찰, 공무원 등은 미성년자를 비롯한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조직적인 납치·감금해 구타, 폭행, 성폭행, 살해, 유기 등이 자행됐다.

이 사건 납치 감금에 가담한 경찰, 공무원 등은 오로지 승진이 목적이었다는 것에 국민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무작위로 잡아 들인 인원이 무려 3000여명에 달했으며 그중 고문과 살인으로 모두 513명이 사망한 참혹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1986년 부산지검 울산지청에서 이 사건을 수사하려 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용히 덮였으며 1987년 3월, 직원의 구타로 인해서 1명이 숨지고 35명이 탈출에 성공하면서 형제복지원의 인권유린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사회적 이슈화가 되며 국민에게 공분과 충격을 사는 이유 중 하나는 부랑자와 은둔자들의 단속 명목으로 만들어진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90% 이상이 부랑인이 아닌 지나가던 평범한 일반 시민들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기차역 대합실에서 TV를 보다 끌려가거나 혹은 시장에서 음식 먹다가 끌려간 사람, 심지어 동네 집 밖에서 뛰어놀던 아이들까지 납치해 수용됐다.

수용인들은 단순히 수용만 된 것이 아니라 강제노역,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되고 중노동을 당했다.

이들이 이 같은 행태를 자행한 이유는 부랑인과는 상관없이 수용만 시키면 국가에서 인원수대로 지원금이 지원된 점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복지원은 당시 금액으로 해마다 20억원에 달하는 국고 지원금으로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복지원 수용인 대부분이 강제로 끌려온 일반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으며 강제 용역과 폭행, 장기 매매, 살인 등이 일어났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며 검찰이 조사에 나섰다.

1989년 재판에 넘겨진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은 업무상 횡령과 초지법 위반, 외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만 유죄로 인정받아 1심에서 10년에 벌금 6억원이 선고됐지만 7번의 재판 결과 벌금형은 사라지고 2년 6개월의 솜방망이 처벌을 선고받았다. 뿐만 아니라 박 원장의 ‘형제원 사건’의 핵심인 인권유린 부분에 대해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출소한 박 원장은 법인 이름을 여러 번 바꿔가며 자산규모 1000억원대 ‘형제복지지원재단’을 세워 운영했고 사회복지법인대표자협의체 회장까지 역임했다.

이 같은 일은 부산시와의 유착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의혹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의혹이 근원은 박 원장의 법인체가 비영리 법원으로 수익사업을 했으며 또 저축은행에서 100억원대 장기대출을 받는 등 지자체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로써 당시 이와 관련 공무원 10여명이 감사를 받고 처벌을 받았으나 처벌수위 또한 감싸기식 처벌이라는 비판이다.

현재 박 원장은 사망했고 원장 일가족은 형제복지원을 ‘형제복지지원재단’으로 이름을 바꾼 채 시설을 다시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13일 부산 형제복지원 진상을 밝혀 달라는 청원이 올라온 가운데 30일 현재에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건 재조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오고 있다. 이 청원은 내달 13일까지 진행된다.

청원 참여자들은 “이런 일을 저지른 박정희 묘가 국립묘지에 있다는 게 화가 납니다. 관련자들을 공개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죄를 묻고 합당한 처벌을 해야 합니다. 가해자들에 재산을 몰수해서라도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야 합니다” “인권학살사건을 찬·반을 논한다는 것이 참 암울하고 가슴 아픕니다. 십수 년까지 지옥같은 곳에서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수도 없는 사람들이 죽었는데 ‘공소시효가 끝나서 처벌하기 힘들다’는 이런 말들이 더 고통스럽게 합니다. 유가족들이 고통에 살아가는데 다른 나랏일인 양 하는 모습들 분한 마음에 치가 떨립니다 남의 고귀한 신체를 빼앗고 영혼까지 뺏은 것은 세상 어느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를 바로잡지 않고서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상각합니다”란 글을 남기며 동의했다.

당시 부산 형제복지원에 납치·감금된 피해자들은 보상은커녕 사과 한마디 제대로 받지 못한 채 30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 관심과 촉구만이 국회의 법안 발의가 통과돼 형제복지원뿐 아니라 대구, 대전 등 유사한 사건도 해결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어떻게 실마리가 풀려나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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