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판문점선언은 올해 안에 ‘종전선언’이란 문구를 담고 있다. 상상이 안 가지만 무척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상상해 보자. 전쟁이 끝났다. 한반도에서 전운(戰雲)이 걷히고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열렸다. 호황을 가로막던 지정학적 변수가 사라졌다. 한국 기업·주식·화폐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될 것이다. 북풍(北風·북한 변수)도 잦아들었다. 이제 동아시아 역사 문제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상식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북한의 도발을 혐한(嫌韓)으로 확대했던 일본 우익의 헤이트스피치는 지지를 얻기 어렵다. 징병제 폐지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당장 병력을 줄일 수 없어도, 군 복무로 낭비되는 청춘의 아까운 시간들과 막대한 국방비를 덜어내 다음 세대로 넘겨줄 수 있다.

이 꿈 같은 이야기는 65년간 매듭짓지 못한 한국전쟁을 끝낼 때 비로소 실현이 가능해진다. 한국전쟁은 휴전 상태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해 1953년 7월 27일 유엔 연합군과 북·중 연합군의 정전 협정으로 중단됐다. 정전은 교전만 멈췄을 뿐 전쟁을 끝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평가되는 한국전쟁은 아직 진행되고 있다. 20세기부터 시작된 전쟁을 끝내지 못한 곳은 지구상에서 한반도 단 한 곳뿐이다. 우리에게 한국전쟁의 평화적 해결은 현재와 미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그들(남북한)이 종전을 논의하고 있다. 나는 이 논의를 축복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오는 27일 판문점 남측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만나 한국전쟁의 ‘종전’을 논의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만으로 원화는 강세를 나타냈고, 하락 일변도였던 코스피·코스닥 지수는 상승장으로 돌아섰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전쟁 종전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어떤 기대와 우려를 품고 있으며, 반대하는 여론은 없을까. 한 신문은 지난 18일 빅데이터 분석업체 데이터앤리서치에 의뢰해 정오까지 오전 중으로 트위터·인스타그램·유튜브·네이버·다음에서 언급된 ‘종전’ 키워드를 분석했다. 페이스북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수집 대상에서 제외됐다. ‘종전’의 버즈량은 1만 8441건이었다. 버즈량은 빅데이터를 수집한 공간에서 키워드가 언급된 횟수를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발언이 국내로 전해진 시점은 오전 5시 전후. 따라서 ‘종전’은 7시간 동안 시간당 평균 2630회 넘게 언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종전’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오전 내내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순위 1위에 있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 상당수에게 한국전쟁은 조부나 증조부 시절의 사건이다. 그러나 전쟁영웅들 또한 많이 살아 있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 종전에 대한 즉각적인 의견에서 긍정, 또는 부정의 양론보다 중립적인 견해가 가장 많다. 종전에 대한 빅데이터 감성 유형에서 중립은 60.6%(4494건)로 다른 의견을 압도했다. 긍정적 여론은 24.9%(1816건), 부정적 여론은 14.5%(766건)로 각각 집계됐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감소한 결과로 분석된다. 긍정적 입장으로 나타난 관련어는 ‘축복’ ‘평화’ ‘적법’ ‘칭찬’ ‘좋다’ 순으로, 부정적 입장의 관련어는 ‘그닥(그다지 원하지 않는다)’ ‘괴롭다’ ‘정전’ ‘불법’ ‘갑작스럽다’ 순으로 각각 집계됐다. 부정적 견해에서 ‘원하지 않는다’거나 ‘갑작스럽다’는 취지의 관련어는 한국전쟁 종전을 통일의 수순으로 판단해 나타난 결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에 대해 종전 선언을 하려면 전쟁을 수행한 실질적인 당사자가 모두 참여해야 법적 의미와 효력을 갖는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8년 11월 11일 독일과 연합군이 파리 북동쪽 콩피에뉴숲에 정차된 열차에서 정전협정을 체결하면서 일단 중지됐다. 이어 이듬해 6월 파리 베르사유조약으로 완전히 종지부를 찍었다. 전쟁 당사자인 남북과 미국·중국의 한반도 종전 선언은 베르사유조약에 가깝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전쟁은 종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체제 보장을 위해 비핵화의 조건으로 요구하는 평화협정은 현실적으로 북한의 핵 폐기가 먼저 이뤄져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실질적인 군사 위협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종전 선언을 서두를 경우 자칫 우리의 전쟁 수행 체제만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종전 선언이 이뤄지면 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되고 한미연합사의 존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확실히 봄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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