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충무공 탄신 473주년, 500년 세월을 넘어 명장 이순신을 만나다
[쉼표] 충무공 탄신 473주년, 500년 세월을 넘어 명장 이순신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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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자리 잡은 현충사(顯忠祠) 사당(본전)에서 방문객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31일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자리 잡은 현충사(顯忠祠) 사당(본전)에서 방문객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걷다보면 과거로 ‘시간여행’

봄내음 맡으며 현충사 올라

충무공, 지혜·충성·용기 배워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1597년(선조 30년) 13척의 배로 130척이 넘는 적선을 무찌른 울돌목해전 곧 명량해전에 앞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부하 장병들을 모아 놓고 한 말이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백성을 지키고자 했던 이순신의 정신을 기리고 되새길 수 있는 여행지가 있다면 어디가 있을까?

물론 많은 사람이 임진왜란 직전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했던 전남 여수를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그보다 앞서 이순신이 거했던 곳이 있다. 이순신이 32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거주했던 고택(故宅) 등이 있는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자리 잡은 ‘현충사’가 바로 그 장소다.

이순신의 제 2의 고향이기도 한 아산에 위치한 현충사에는 충무공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현충사(顯忠祠)’ 곧 사당(본전)이 있고, 충무공이 무예를 연마하던 활터, 혼인 후 거했던 고택 등이 있다. 본지가 지난달 31일 찾은 현충원의 모습은 봄의 기운을 가득 품고 자라나는 새싹과 따뜻한 햇살이 더해져 마치 점점 무인으로 성장해가는 이순신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 했다.

31일 충남 아산시 현충사 내 충무문 앞에 위치한 전시관에 전시된 충무공 영정.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31일 충남 아산시 현충사 내 충무문 앞에 위치한 전시관에 전시된 충무공 영정.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충무공 만나러 과거로 가는 길

현충사는 충남 아산시 온양온천역에서 버스로 30분, 승용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주차장이 넓고 입장료가 무료라서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지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문을 통과해 걷다보면 현충사 경내·외를 구분하기 위해 만든 충무문이 나온다. 충무문은 사당의 외부 경역임을 알리는 외삼문(外三門)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을 통과하면서부터는 현대 양식으로 된 건물을 찾아 볼 수 없어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조금 더 걷다보면 오른쪽에 정려를 볼 수 있다. 정려란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고 후세에 본받게 하려고 조정에서 편액을 내려 마을 입구에 걸어 두는 것을 말한다. 편액은 널빤지나 종이·비단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문 위에 거는 액자를 뜻한다.

현충사에 있는 정려에는 충무공과 조카 이완, 4대손 이홍무, 5대손 이봉상을 비롯한 충신, 8대손 효자 이제빈까지 모두 다섯 분의 충신·효자 편액이 모셔져 있다. 이를 통해 충무공 종가에 이어져온 정신과 그 정신을 높이 평가한 임금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바람을 따라 은은하게 퍼지는 향긋한 봄내음을 맡으며 걷다가 현충사 중앙의 큰 나무를 지나면 현충사 본전으로 향하는 곧게 뻗은 길이 나타난다. 길 좌우에는 한 눈에 봐도 오랜 시간을 보냈을 것 같은 소나무를 볼 수 있는데 길 중앙으로 줄기와 가지를 뻗은 모습이 마치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는 것 같다. 소나무도 충무공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 아닐까.

현충사에 오르기 전 통과하는 문인 홍살문은 그러한 마음을 더 잘 표현하고 있었다. 보통 사당이나 궁전에 들어오는 길머리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인 홍살문은 사당의 경내를 표시하고 문을 통과한 뒤에는 경건성을 유지해야 하는 성역임을 알려준다.

31일 충남 아산시 현충사 내 현충사에 오르기 전 통과하는 문인 홍살문. 보통 사당이나 궁전에 들어오는 길머리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인 홍살문은 사당의 경내를 표시하고 문을 통과한 뒤에는 경건성을 유지해야 하는 성역임을 알려준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31일 충남 아산시 현충사 내 현충사에 오르기 전 통과하는 문인 홍살문. 보통 사당이나 궁전에 들어오는 길머리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인 홍살문은 사당의 경내를 표시하고 문을 통과한 뒤에는 경건성을 유지해야 하는 성역임을 알려준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기구한 역사 속 현충사

충무공을 만나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길을 따라 놓인 계단을 올라가면 웅장한 모습의 현충사를 만날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벌써 몇몇 사람들이 현충사에 세워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바라보며 향을 피우고 있었다.

사실 현충사의 모습은 지금보다 더 작았고 위치도 더 아래쪽에 있었다고 한다. 본래 있었던 구(舊) 현충사는 1706년(숙종 32년)에 충청도 아산 유생들이 숙종에게 상소해 조정에서 이를 허락해 건립했다. 1707년에는 숙종이 직접 ‘현충사(顯忠祠)’라는 현판을 내렸다.

구(舊)현충사와 현판. 구(舊) 현충사 현판은 1707년 숙종 임금이 내린 현충사 현판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구(舊)현충사와 현판. 구(舊) 현충사 현판은 1707년 숙종 임금이 내린 현충사 현판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이후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리게 됐다. 일제감점기인 1931년 충무공 종가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져 충무공의 묘소와 위토(제사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토지)가 은행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이에 우리 민족 지사들이 묘소와 위토를 지킬 기금을 민족성금으로 모아 마련했고 이 기금으로 1932년 구 현충사를 중건했다.

이후 1966년부터 1974년까지 현충사 성역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현충사를 준공했다. 구 현충사는 현충사 내 다른 자리로 옮겨져 세워지게 됐다. 새 현충사에서는 해마다 충무공이 태어난 4월 28일(음력 3월 8일)을 기념해 정부주관으로 제전을 올리고 있다.

31일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자리 잡은 현충사(顯忠祠) 사당(본전)에서 방문객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31일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자리 잡은 현충사(顯忠祠) 사당(본전)에서 방문객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31일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자리 잡은 현충사(顯忠祠) 사당(본전)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보이는 가운데 방문객들이 피운 향이 피어오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31일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자리 잡은 현충사(顯忠祠) 사당(본전)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보이는 가운데 방문객들이 피운 향이 피어오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충무공의 삶을 그린 십경도

현충사에는 충무공 영정과 함께 내부에 십경도(十景圖)가 전시돼 있다. 십경도는 이순신 장군의 생애에서 중요한 10가지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소년시절부터 노량해전의 생애 마지막 모습까지 충무공의 인생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1545년 4월 28일(음력 3월 8일) 서울 건천동(지금의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난 이순신은 어려서부터 의협심이 강하고 용감했다고 전해진다. 십경도에는 어린시절 전쟁놀이를 하며 동무들을 이끄는 이순신의 모습이 담겼다.

31일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자리 잡은 현충사(顯忠祠) 사당(본전)에 십경도(十景圖)가 전시돼 있다. 해당 장면은 충무공이 왜적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둔 부산해전을 표현한 그림.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31일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자리 잡은 현충사(顯忠祠) 사당(본전)에 십경도(十景圖)가 전시돼 있다. 해당 장면은 충무공이 왜적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둔 부산해전을 표현한 그림.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이 외에도 이순신이 처음으로 무과시험에 응시했다가 낙마해 왼쪽 다리에 골절을 입었지만 나뭇가지를 꺾어 다리에 동여매고 끝까지 시험에 응하는 모습, 초급 무관시절 그의 나이 43세 때(1587년) 함경도에서 여진족과 전투하는 장면, 임진왜란 발발 14개월 전인 1591년 2월 전라좌수사 시절 전쟁에 대비해 거북선 건조를 지시하는 모습, 왜적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둔 부산해전, 삼도수군통제사가 돼 한산도에서 진을 친 가운데 나라를 걱정하며 진중 일기를 쓰는 모습, 어머니를 만나는 모습,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죄인의 몸이 돼 압송되는 모습, 13척의 배로 130척이 넘는 적선을 무찔렀던 명량대첩, 충무공에게 마지막 전투가 됐던 1598년 11월 18일 노량해전 등이 표현됐다.

충무공의 삶을 통해 유비무환의 지혜와 충성심, 용기를 배우며 느끼고 돌아서면 현충사 아래로 저 멀리 아산 도심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새로운 다짐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이 장소를 적극 추천한다.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이어진 장면을 보며 현실로 돌아갔을 때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할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다.

31일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자리 잡은 현충사(顯忠祠) 사당(본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31일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자리 잡은 현충사(顯忠祠) 사당(본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이순신의 삶의 흔적 ‘고택·활터’

현충사에서 내려와 왼쪽 길을 따라가면 충무공이 거했던 고택이 나온다. 고택은 충무공이 21세가 되던 해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의 딸 상주방씨와 혼인하면서 살게 된 처갓집인데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본가가 됐다. 충무공은 32세로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집 안에는 가마솥이 있었는데 제사 때가 되면 전통 방식 그대로 사용한다고 한다. 집 뒤편에는 충무공의 신위를 모신 가묘가 있다.

31일 충남 아산시 현충사 내 위치한 고택의 내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31일 충남 아산시 현충사 내 위치한 고택의 내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31일 충남 아산시 현충사 내 위치한 고택의 내부에 가마솥에서 김이 오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31일 충남 아산시 현충사 내 위치한 고택의 내부에 가마솥에서 김이 오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고택 옆 은행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 장소는 충무공이 활쏘기를 연습하던 곳이다. 과녁판은 활터에서 남방으로 145m떨어진 곳에 있으며 이순신 장군이 연습하던 당시에는 200m 거리였고, 임금님이 북쪽에 계시기 때문에 항상 남쪽을 향해 활쏘기 연습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는 매년 전국궁도대회가 열려 충무공의 궁술 기예를 기린다고 한다. 방문객들을 위한 활쏘기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는데 선수들이 사용하는 거리보다는 짧은 거리에서 과녁을 쉽게 맞힐 수 있도록 돼 있다.

활터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면공 묘소가 나온다. 이면공은 충무공의 셋째 아들로 어려서부터 인물이 출중하고 말 타기와 활쏘기에 능해 충무공이 극진히 사랑하던 아들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21세 때 마을에 침입한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이순신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지난 2011년에 건립된 전시관인 충무공이순신기념관 방문을 추천한다. 충무문 앞에 위치한 전시관에는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에 관한 각종 유물이 전시돼 있고, 교육관에서는 이순신 장군 정신과 위업선양을 위한 강의와 세미나를 진행한다.

31일 충남 아산시 현충사 내 위치한 활터와 활쏘기 체험장.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31일 충남 아산시 현충사 내 위치한 활터와 활쏘기 체험장.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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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석 2018-05-01 13:27:24
역사적으로 가볼곳이 참 많네요 우리들의 영원한 영웅 이순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