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휴가지에서 돌아와, 컴퓨터를 켠다. 잠시 닫아 두었던 눈과 귀를 열고 세상을 들여다본다. 세상은 여름날의 피서지와는 달리 여전히 살벌하다. 컴퓨터 화면 속 커서가 쉼 없이 깜빡이며, 어서 날 좀 쳐 주세요 하고 보챈다. 보챈다, 정말.

서해에서는 대한민국과 미국이 척척 호흡으로 우정을 뽐내고, 북쪽에선 강력한 물리적 대응타격 운운하며 경계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파도가 넘실거릴 때마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으로 청춘을 만끽하는 평화로운 피서지의 풍경과 달리, 같은 나라 저편 바다에선 대신 군함과 함포의 굉음이 울려 퍼지고 있다는 걸 상상하자, 뭔가 기묘한 감정들이 뒤섞인다.

장마철을 맞아 북한에서 흘러 내려왔다는 목함 지뢰 소식도 반갑지 않다. 그 지뢰들로 인해 인명사고가 또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당장 그것들을 찾아내고 제거하는 데 비지땀을 쏟고 있을 장병들을 생각하면, 휴가랍시고 며칠 다녀온 내 처지가 몹시 황망하고 미안하기 그지없다. 

얼마 전에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목사가 법을 어기고 북한으로 넘어가 기막힌 소리를 해대는 통에 숨이 막히더니, 연일 뉴스 꼭지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성폭행 사건들도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초등학생들도 피켓을 들고 제 의사 표시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두고서도 논쟁 중이다.

전교조 소속 교사가 아이들에게 학업성취도평가 시험을 보지 않는 대신 체험학습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이유로 해임되자, 아이들이 선생님을 돌려달라며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고, 교사들이 피켓을 빼앗고 찢어버린 것은 잘못된 짓이니 교장은 앞으로 그런 일 없도록 교육을 잘 시키라고 한 게 인권위 결정이었다.

전교조와 지지 세력들은 두 손 들어 환영이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단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제한받아서는 안 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반면 미성년자는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므로 권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게 반대 입장이다.

인권위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에 보다 근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전교조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다. 전교조의 목적과 활동의 정당성과 선악의 여부를 떠나 많은 학부모들은 이번 인권위의 결정이, 아이들이 전교조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질 수 있는 빌미를 줄까 두려워한다. 전교조 혹은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세력이나 단체들의 ‘도구’로 이용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요즘 ‘소통’이 부족하다며 아우성이다. 특히 ‘앞서 나아간다’는 사람들이,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마찬가지로 전교조도 그들을 의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학부모들과 소통해야 한다. 소통하지 않는 대신 자신들의 주장만 줄기차게 반복하는 것은 옳지 않다.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소통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소통하려 했으나 마음을 얻지 못했다면, 소통의 기술이 모자라거나 애초 마음을 얻지 못할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교조 선생님이라면 마음 편히 아이를 맡겨도 된다’는 믿음만 있으면 어느 학부모가 마다하겠는가.

무덥고 답답한 계절, 곧 불어올 가을바람처럼 속 시원한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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