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박완희 기자] 북한 사리원 금강국수공장과 금강빵공장 설립 등 남북교류활동에 앞장서 온 법타스님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진행한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불교계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법타스님은 지난 2012년 7월 27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3회 종교평화상’ 시상식에서 미주종교평화협의회(상임대표 양운성)로부터 종교평화상을 수여받았다. 1992년에는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을 지내며 북한 사리원 금강국수공장 설립 및 식량지원과 북한 평양 금강빵공장 등을 설립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4
[천지일보=박완희 기자] 북한 사리원 금강국수공장과 금강빵공장 설립 등 남북교류활동에 앞장서 온 법타스님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진행한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불교계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법타스님은 지난 2012년 7월 27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3회 종교평화상’ 시상식에서 미주종교평화협의회(상임대표 양운성)로부터 종교평화상을 수여받았다. 1992년에는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을 지내며 북한 사리원 금강국수공장 설립 및 식량지원과 북한 평양 금강빵공장 등을 설립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4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전 회장 법타스님
20년간 남북교류에 혼신 다해
평양축전 당시 최초 북한 방문
사리원에 금강국수공장 설립

승복 처음 본 북한 주민 반응
“역사학자입네까” “스님이요”
“다시 한번 북한 땅 밟고 싶어”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남북정상회담과 맞물려 북한이 핵실험 중지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등을 발표하고 남측도 대북 확성기방송 중단 등으로 화답하면서 훈풍이 불고 있다.

그간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지원을 해왔던 종교계는 현 상황이 꿈만 같다. 특히 최근 7대 종단 지도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통일부 장관을 통해 남북 종교·민간교류를 강조한 바 있어서 종교교류를 통한 민간교류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한반도가 경색된 긴장상태로 돌변하기 전 북한을 왕래하며 주민들을 도왔던 종교단체들은 기대감이 상당하다.

이에 본지는 해빙과 경색을 거듭했던 지난 20여년간 남북교류에 힘써 온 전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장 법타스님을 만나 현 정국에 대한 심경을 들어봤다.

법타스님은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을 지내면서 1992년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결성 후 사리원에 금강국수공장 설립 및 식량지원과 북한 평양시에 금강빵공장을 설립하는 등 남북 교류에 앞장서 왔다. 스님은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남북불교교류에 박차를 가했다. 당시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와 금강산문화유적복구협약을 맺고 금강산 신계사 복원사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2002년에는 평양 법운암 단청과 삼존불 개금, 사리원 성불사 단청 및 삼존불 개금 등 북한 사찰과 불교문화재 보존사업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20여년간 불교계 성직자로서 남북교류활동에 선구자적 역할을 해 온 법타스님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7월 미주종교평화협의회로부터 ‘종교평화상’을 수상했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법타스님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스님은 다시 한번 북한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박완희 기자] 북한 사리원 금강국수공장과 금강빵공장 설립 등 남북교류활동에 앞장서 온 법타스님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진행한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불교계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법타스님은 지난 2012년 7월 27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3회 종교평화상’ 시상식에서 미주종교평화협의회(상임대표 양운성)로부터 종교평화상을 수여받았다. 1992년에는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을 지내며 북한 사리원 금강국수공장 설립 및 식량지원과 북한 평양 금강빵공장 등을 설립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4
[천지일보=박완희 기자] 북한 사리원 금강국수공장과 금강빵공장 설립 등 남북교류활동에 앞장서 온 법타스님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진행한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불교계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법타스님은 지난 2012년 7월 27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3회 종교평화상’ 시상식에서 미주종교평화협의회(상임대표 양운성)로부터 종교평화상을 수여받았다. 1992년에는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을 지내며 북한 사리원 금강국수공장 설립 및 식량지원과 북한 평양 금강빵공장 등을 설립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4

법타스님은 남북교류에 있어서 종교·민간교류를 강조한 문 대통령의 말에 전적으로 지지를 표했다. 스님은 “종교인들이 남북교류에 앞장서 국민의 통일의식을 일깨워야 한다”며 “정치·외교적 교류보다 종교·민간교류를 강조한 문 대통령의 말에 동감한다”고 말했다.

법타스님은 2007년 7월 12일 ‘금강산 관광객 박광자 주부 피살사건’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건’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에 의한 군인 2명, 민간인 2명 사망사건’ 등의 사례를 나열하며 이 모든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됐다고 지적했다.

또 스님은 이로 인해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타스님은 남북관계에서 정책을 운영하는 사람의 사고나 의지는 상황에 따라서 변할 수 있지만, 종교·민간단체는 인도주의적으로 정치성이 배제된 순수한 단체기 때문에 남북교류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민간‧종교인들처럼 순수하게 했더라면 이러한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고, 예방도 됐을 것”이라며 “같은 형제고 친구인 존재들인데 서로 교류·협력이 잘 됐으면 죽이는 일이 일어났겠는가”라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법타스님은 남북회담 이후 해빙분위기가 이어져 남북교류가 활발해진다면 1998년도에 가동했던 국수공장 현황을 파악하고, 현실적으로 절실히 요구되고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다고 밝혔다.

또 북한에 있는 불교문화재를 통해 서로 동질감을 회복하고 싶다고도 강조했다. 또한 남북회담을 통해 비핵화에 대한 대화와 6.25 때 헤어진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염원했다.

스님은 “특히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안 쏘겠다는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다”면서 “이로 인해 평화의 분위기가 빨리 정착됐으면 좋겠고, 이제부터는 정치적으로 밀고 당기지 말고 북한이 경제적으로 일단 먹고 살도록 쌀이라도 듬뿍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남북회담을 통해 서로 연락할 수 있는 통신 매개체와 남북한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통행, 그리고 북한의 무한한 자원을 다른 나라에 싸게 팔 것이 아니라 남한에 제값 받고 팔아서 남과 북이 잘 살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천지일보=박완희 기자] 북한 사리원 금강국수공장과 금강빵공장 설립 등 남북교류활동에 앞장서 온 법타스님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진행한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불교계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법타스님은 지난 2012년 7월 27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3회 종교평화상’ 시상식에서 미주종교평화협의회(상임대표 양운성)로부터 종교평화상을 수여받았다. 1992년에는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을 지내며 북한 사리원 금강국수공장 설립 및 식량지원과 북한 평양 금강빵공장 등을 설립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4
[천지일보=박완희 기자] 북한 사리원 금강국수공장과 금강빵공장 설립 등 남북교류활동에 앞장서 온 법타스님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진행한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불교계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법타스님은 지난 2012년 7월 27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3회 종교평화상’ 시상식에서 미주종교평화협의회(상임대표 양운성)로부터 종교평화상을 수여받았다. 1992년에는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을 지내며 북한 사리원 금강국수공장 설립 및 식량지원과 북한 평양 금강빵공장 등을 설립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24

스님은 과거 북한 지원활동을 하며 겪었던 어려움도 털어놓았다. 스님은 종북으로 몰려 구금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이 정치 상황에 따라 남북교류활동을 악용했죠. 김영삼 정부 시절, 신공안 정국 때였어요. 저는 국가보안법의 고무‧찬양 위반으로 긴급체포 됐어요. 국립선방(교도소)에서 105일간 구금돼 있었죠. 국가보안법 위반 딱지가 대법원에 계류돼, 김대중 정권 때까지 6년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어요.”

1990년대 북한 주민들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시도했던 종교인들의 수난은 상당했다. 종북 좌파로 몰리기 일쑤였고, 북한 주민을 도왔다는 이유로 체포돼 공권력의 폭행을 받아야 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원로인 법타스님도 그러했다.

스님은 “김영삼 정권 때 친북좌파라며 체포해 남영동에 데려갔다”며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 이 사건이 (종교인들의 인도적 대북 지원활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사건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그런가 하면 스님이 방북 당시 겪었던 경험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1989년 평양 축전에 참여했을 때였지요. 대한민국 여권을 들고 최초로 북한을 방문했는데, 그때가 내 제삿날이 될까 봐 전날 밤 한숨도 못 잤습니다(웃음). 25일 동안 북한에 있었어요. 저는 승려니까 승복을 입고 갔지요. 그런데 북한 사람이 승복을 보고는 그저 한복인 줄 알고 역사학자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나에 대해 소개하니 그다음부터는 ‘중 선생님’이라고 불렀죠. 그 장면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스님은 방북 당시 귀가 터져 고생했었던 일화도 알려줬다. 그는 “한국에서 약 한 알이면 될 것을 북한은 약이 없어 힘들었다”고 토로하면서도 그래도 다시 북한 땅을 밟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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