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정치현상을 분석하고 논평하는 일을 하다보면 가끔 ‘좌표’가 헷갈릴 때가 있다. 현상의 ‘본질’을 놓치거나 또는 ‘오판’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본질이라는 것이 거대한 ‘세기적 변화’이거나 ‘과학기술의 변화’와 맞물릴 때는 더 복잡해진다. 자칫 ‘탁상공론’의 늪으로 빠지거나 ‘아전인수식 이해’에 빠져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지혜를 구하거나 다시 더 깊은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얇은 지식의 한계를 통절해 하면서 말이다.

인링크 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필자도 가끔 가는 길이 어디인지, 어디서 헤매고 있는지를 자성할 때는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의 글을 읽는다. 중요한 길목마다 적잖은 상상력과 좌표의 밑그림을 전해주는 ‘지성’으로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아탈리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정보의 양극화와 ‘정보 조작’에 대한 인식이 덜했다. 그 때 아탈리는 ‘디지털 혁명’을 언급하며 그 선두에 있는 한국이 2030년에는 세계의 ‘11대 거점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그러면서 정보화 시대의 자원인 정보를 ‘조작’하는 일이 없도록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한국은 거대 포탈인 네이버의 ‘정보 조작’이라는 위중한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출범 당시만 해도 디지털 정보화 시대의 ‘총아’로 부상했던 네이버가 불과 10여년 만에 정보를 조작하고 그 뒤로는 돈벌이에 몰두하는 ‘괴물’이 돼버린 셈이다. 마치 아탈리의 조언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네이버의 돈벌이 사업에 크고 작은 미디어의 역할은 속수무책이 돼버린 형국이다.

최근 ‘드루킹 사태’와 맞물려 네이버를 향한 사회적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뉴스 콘텐츠 유통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댓글’과 ‘공감’ 시스템을 통해 손쉽게 돈벌이에 몰두하더니 결국 ‘여론 조작’의 본류가 되고 말았다는 공분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여론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네이버의 위상과 이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뉴스 배치의 불공정성 그리고 이를 위한 ‘헤비 유저들’의 여론조작은 이미 한덩어리로 세팅이 돼 버린 느낌이다. 이를 통해 ‘비즈니스의 기술’과 ‘여론조작의 힘’, 다시 말하면 ‘돈과 권력’이 이심전심으로 교감하면서 네이버는 어느 새 ‘디지털 괴물’이 돼버렸다는 탄식이다. 오죽했으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 100여명이나 모여 네이버 본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됐을까 싶다.

그러나 네이버는 깊은 성찰도 본질적 대안도 내놓지 않았다.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자 지난 25일 급하게 내놓은 보완책은 말 그대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이를테면 계정당 24시간 동안 동일한 기사에 쓸 수 있는 댓글을 20개에서 3개로 제한한다거나 연속적으로 댓글을 달 수 있는 간격을 10초에서 60초로 늘리는 등이다. 그리고 공감·비공감을 누르는 개수와 시간도 제한하는 정도이다. 기존의 댓글 정책에서 대부분 숫자만 제한하는 식으로 바꾼 것이다. ‘땜질식 처방’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인 것이다.

그렇다면 네이버의 이번 대책이 그만큼의 실효성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계정 한 개를 기준으로 설정한 보완책이기 때문에 그 계정의 숫자만 늘리면 하나마나한 처방이라는 것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또는 매크로 같은 기계를 통해 계정은 얼마든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드루킹은 600여개의 아이디(ID)로 특정 여론을 쥐락펴락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제2, 제3의 드루킹에게 이번 네이버의 보완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마 뒤에서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새 너무 커버린 ‘디지털 괴물’은 이제 여론조작을 넘어서 권력까지 좌지우지할 만큼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 정치권 일각의 시각이다. 현재 검경의 수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문제는 ‘드루킹 일당’의 여론조작이 지난 대선 때 어느 정도였는지가 관건이다. 만일 여론조작으로 대선 판세가 움직였고 이를 네이버가 방조 또는 판을 깔아 줬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민주주의’로의 진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선두에 한국이 달리고 있다. 그러나 10여년 전 아탈리가 경고했던 ‘정보 조작’이 현실화 되면서 근대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민주주의도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신뢰성의 위기’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다 근본적인 처방전을 만들어야 한다. 네이버는 이미 자정(自淨) 기능과 자기통제를 하기 어려울 만큼 덩치가 커버렸다. '외과 수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세계 시장의 80% 이상을 독점하고 있지만 최소한 여론조작 시비만큼은 한 발 떨어져 있는 ‘구글’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인링크(In Link) 제도를 폐지하고 아웃링크(Out Link) 제도로 가야 한다. 그리고 ‘댓글 실명제’를 도입하거나 아니면 댓글 기능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 최악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국회가 나서야 한다. 디지털 괴물을 통제할 수 있는 법률적 대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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