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 부근에서 본지 기자(왼쪽)가 양해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연구원) 시각장애 인식개선 교육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선형블록을 밟으며 이동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9
9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 부근에서 본지 기자(왼쪽)가 양해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연구원) 시각장애 인식개선 교육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선형블록을 밟으며 이동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9

횡단보도 신호기 침묵 ‘답답’

길 가로막은 ‘오토바이·차량’

간이상점, 선형블록 영역침범

“생각 없이 한 행동, 큰 위험”

[천지일보=김빛이나, 남승우 기자]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된다면 생활은 어떻게 달라질까? 비장애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는 일이나 상황들도 장애인에게는 큰 불편함이 될 수 있다. 본지 취재팀은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시각장애인이 겪고 있는 불편함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안대를 쓰고 거리로 나섰다.

지난 9일 본지 취재팀은 서울 용산구 용산역 앞에서 양해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연구원) 시각장애 인식개선 교육 담당자를 만났다. 양 연구원은 검은색 안대와 흰 지팡이를 주면서 처음 체험하더라도 안내자의 안내를 받으면 안전하게 교육을 마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9일 서울 용산구 나진전자상가 인근 횡단보도에서 본지 기자(왼쪽)가 양해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연구원) 시각장애 인식개선 교육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길을 건너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9
9일 서울 용산구 나진전자상가 인근 횡단보도에서 본지 기자(왼쪽)가 양해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연구원) 시각장애 인식개선 교육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길을 건너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9

하지만 양 연구원의 말은 검은색 안대를 쓰고 흰 지팡이를 잡는 순간부터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온 신경은 귀와 발끝으로 향했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며 오토바이 소리, 경적소리 등 온갖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평소와 같았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소리가 눈앞이 캄캄해진 뒤로부터는 바로 앞에서 나는 소리인양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양 연구원은 시각장애인이 용산역에서 내려 역 근처 나진전자상가에 물품을 구매하러 오가는 상황을 가정해 길을 안내했다. 천천히 길을 걷다가 인도와 차도 사이에 설치된 점형블록을 밟고 서니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점형블록에서 ‘점’은 ‘길의 끝’ 즉 멈춤을 의미하며, ‘긴 막대기 모양’ 선형블록은 보행길을 의미한다.

목적지를 향한 걸음에 첫 번째 관문인 횡단보도를 만났다. 신호등 기둥에 설치된 시각 장애인용 음향 신호기를 눌렀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가 없다. 답답함과 의문을 참고 한참을 기다렸을까. 신호기는 ‘삐삐삐’ 소리를 내며 보행신호로 신호가 바뀌었음을 알렸다.

9일 서울 용산구 나진전자상가 인근 횡단보도에서 본지 기자가 양해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연구원) 시각장애 인식개선 교육 담당자와 함께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가운데 신호등 기둥에 설치된 시각 장애인용 음향 신호기가 보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9
9일 서울 용산구 나진전자상가 인근 횡단보도에서 본지 기자가 양해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연구원) 시각장애 인식개선 교육 담당자와 함께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가운데 신호등 기둥에 설치된 시각 장애인용 음향 신호기가 보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9

양 연구원은 이 신호기처럼 눌렀을 때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는 신호기가 있고 나오는 신호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는 신호기가 고장이 난 경우 시각장애인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 지 모르는 일이다.

양 연구원에 따르면 신호기가 고장 나 신고를 해도 1~2주 정도는 기다려야 수리가 된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은 음향신호기 리모콘을 통해 직접 신호기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주변에 있는 신호기를 작동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신호기가 고장 나 있다면 무용지물이다.

보도블록 가운데 노란색 선형블록은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겠으나 앞이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선형블록은 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길을 가는 중간 중간 발생해 두려움과 답답함이 밀려왔다. 아예 선형블록이 설치되지 않은 곳은 길인지 도로인지 구분도 안 갔다. 또 점형블록이 엉뚱한 곳에 설치된 곳도 있었다.

안대를 쓴 본지 기자(오른쪽)와 양해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연구원) 시각장애 인식개선 교육 담당자가 9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 인근 보도로 이동하는 가운데 인도 위에는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고 인도 바닥에는 보행로를 알려주는 선형블록이 설치돼 있지 않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9
안대를 쓴 본지 기자(오른쪽)와 양해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연구원) 시각장애 인식개선 교육 담당자가 9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 인근 보도로 이동하는 가운데 인도 위에는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고 인도 바닥에는 보행로를 알려주는 선형블록이 설치돼 있지 않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9

인도에 걸쳐 주차된 차량이나 오토바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선형블록을 밟고 있었다. 블록만을 믿고 가다간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내자는 선형블록을 밟고 선 차량이나 오토바이 때문에 결국 열심히 블록만 믿고 가고 있는 기자에게 다른 길을 안내해야 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비단 차량이나 오토바이에 한하지 않았다. 구청의 허락을 받아 설치된 인도 위의 간이 상점에선 물건을 밖에 놓아두면서 선형블록의 영역을 침범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길을 가다가 멈춰서는 일이 반복됐다. 답답했다. 비장애인이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일들도 장애인에겐 큰 불편함이 될 수 있다.

9일 서울 용산구 나진전자상가 옆 인도에서 본지 기자(왼쪽)가 양해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연구원) 시각장애 인식개선 교육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선형블록을 밟으며 이동하는 가운데 인도 위에 설치된 간이 상점이 선형블록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9
9일 서울 용산구 나진전자상가 옆 인도에서 본지 기자(왼쪽)가 양해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연구원) 시각장애 인식개선 교육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선형블록을 밟으며 이동하는 가운데 인도 위에 설치된 간이 상점이 선형블록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9
안대를 쓴 본지 기자(오른쪽)와 양해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연구원) 시각장애 인식개선 교육 담당자가 9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 인근 보도로 이동하는 가운데 인도 위에 ‘멈춤’을 뜻하는 점형블록이 횡단보도 앞이 아닌 엉뚱한 곳에 설치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9
안대를 쓴 본지 기자(오른쪽)와 양해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연구원) 시각장애 인식개선 교육 담당자가 9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 인근 보도로 이동하는 가운데 인도 위에 ‘멈춤’을 뜻하는 점형블록이 횡단보도 앞이 아닌 엉뚱한 곳에 설치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9

이 같은 일은 또 다른 상황에서도 발생한다. 바로 시각장애인이 안내견의 도움을 받아 이동할 경우다. 이때 어린이들은 안내견을 쓰다듬거나 껴안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양 연구원은 “안내견은 안내를 위해 훈련을 받은 특수견이지만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이 만지거나 껴안는 행동을 하면 제대로 된 안내를 할 수 없다”면서 “이 같은 행동은 안내견을 믿고 길을 건너는 시각장애인에게 큰 위험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안대를 쓴 기자는 양 연구원의 도움과 안내자의 도움으로 겨우 나진전자상가를 다녀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고 시간은 출발시간보다 1시간이나 지나간 뒤였다. 분명 비장애인에게는 20분밖에 걸리지 않았을 거리였다.

양 연구원은 “우리가 조금만 더 생각하고 장애인을 배려한다면 더불어 살기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다”며 “더 많은 사람이 장애인의 불편함에 공감하고 함께 그 불편함을 덜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