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시론] ‘높은 문화’ 창조의 주체가 되자
[천지시론] ‘높은 문화’ 창조의 주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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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중세의 종교가 권력과 부정과 부패와 오도된 구원관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며 당시 중세 가톨릭의 절대권력에 항거했다.

물론 그로 인해 불행히도 마녀사냥의 상징이기도 한 최초의 그릇된 신교, 곧 칼뱅교를 탄생시킨 종교사에 씻지 못할 크나큰 오점을 남기긴 했지만, 일단 중세종교로부터의 개혁엔 성공했다.

당시 절대 종교권력 앞에 그가 종교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뭐였을까. 그것은 인쇄술에 의한 인쇄물에 의한 성공이었다. 속칭 ‘95개조’라 불리며 독일 비텐베르크성 교회의 문짝에 라틴어로 된 한 장의 인쇄물이 붙었으니 종교개혁의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점점 교회로부터 배부되는 인쇄물은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했고, 결국 종교개혁은 성공을 가져 왔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하나의 혁명이자 개혁이었으며 문화의 승리였다. ‘문화(文化)’는 ‘글(문자)로써 세상을 변화시킨다’라는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 문화의 혁명은 바로 인쇄술의 발명과 그 인쇄물로 가능케 된 것이며, 결국 종교의 역사 나아가 세계사의 역사를 바꾼 계기가 됐다.

그런데 이 문화의 힘은 서양에서만이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동양, 그 중에서도 한반도에선 일찍이 문화의 꽃이 피고 있었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먼저 1966년 10월 경주 불국사 3층석탑(석가탑)에서 보수공사 중 2층 탑신부에서 발견된 국보 126호로 지정된 ‘다라니경’의 목판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판본이면서 훌륭한 형태를 갖춘 목판본이다. 이 경의 발견으로 목판인쇄술은 한국에서 시작되었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이 목판본은 신라시대 경덕왕 751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1300년의 숨결을 머금은 채 보관되어 있다.

뿐만이 아니다. 목판본에 이어 금속활자에 대한 진실 또한 우리를 놀라게 하고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인류 최초의 금속활자 ‘직지’, 고려 우왕 3년(1377) 즉, 이 금속활자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33년 전 간행된 ‘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알려진 것은 독일 구텐베르크의 성경이었다. 이는 1455년에 발행됐으니, 우리의 ‘직지’보다 78년이나 뒤졌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볼 때 목판인쇄술이나 금속인쇄술이나 아직까지 단정지을 순 없으나 우리의 인쇄술이 유럽 전역으로 퍼졌을 가능성을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으리라 봐 진다.

그런데 여기서 해결해야 할 중대한 현안도 있다. 그것은 우리의 문화유산 ‘직지’는 우리 곁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서 외로이 누워 고국 땅을 밟을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뒤늦게라도 직지가 간행된 곳을 발견하게 되어 우리의 문화유산임을 밝힐 수 있는 근거가 되니 그나마 다행이다. 바로 1985년 청주대학교박물관에 의해 간행장소가 청주 흥덕사로 발견된 것이다.

그로 인해 2000년엔 우리의 문화유산 ‘직지’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2000 청주인쇄출판박람회’를 개최할 수 있었고, 나아가 200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직지’를 등재시킴으로써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공인받게 되었다.

이와 같이 문화의 시발은 글이요 나아가 인쇄술에 의한 인쇄물이다. 또 예술문화를 부흥시킬 수 있는 첩경이 바로 인쇄물임을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그 문화의 시작과 그 중심에 한국이 있었더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이제 잠들었다 깨어보니 그 찬란했던 역사와 문화 속엔 문화의 정신 즉, 얼이 빠져 나가버린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제 그 정신 되살려 한글과 인쇄라는 조화를 통해 이 시대의 ‘높은 문화’를 창조해 널리널리 전파하는 오늘의 혁명이요 개혁의 주체가 되자.

끝으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은 “전쟁도 종교도 다양한 문화를 통해 포용함으로 새로운 문화로 나아가게 된다”는 말씀과 같이 배타적이며 이기적인 문화관을 버리고 인류 공동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이해와 배려가 있고 포용이 있는 문화의식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