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교수 

 

인간의 존엄은 인격체로서 인간이 누구도 감히 범할 수 없는 높고 엄숙한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1962년 제5차 개정헌법, 소위 제3공화국 헌법은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의 산물이지만,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명문화함으로써 기본권의 영역이 본의 아니게 진일보했다. 인간의 존엄을 헌법에 처음으로 도입한 국가는 서독이었던 독일연방공화국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로서 독일은 수많은 생명을 빼앗았던 잘못을 반성하고 생명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의 존엄을 도입했다. 독일은 1949년 헌법인 기본법을 제정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규정했다. 이 이후 인간의 존엄은 여러 국가의 헌법에 규정됐다.

이와 유사한 예는 행복추구권이다. 역사적으로 행복추구권은 1776년 미국 버지니아주 권리장전에 최초로 규정됐다. 이 당시에는 헌법이란 용어가 없어서 국가의 최고규범을 권리장전이라고 했다. 이런 역사를 가진 행복추구권은 1980년 제8차 개헌 때 우리나라 헌법에 최초로 도입됐다. 현행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은 두 번째 문장에서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하여, 국가에게 기본권 보장의 책무를 부과하고 있다.

인간이 존엄하고 가치를 가진다는 것은 철학적이고 존재론적 의미를 갖는다. 인간은 인격의 주체로서 존재하면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다른 사람과 더불어 공동체를 구성해 살고 있다. 인간이 행복하려면 정신적·신체적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헌법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것은, 이 기본적 권리가 신체와 사생활의 자유, 양심과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재산권 등 인간의 자유와 권리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격을 존중받지 못하면 인간의 존재는 무의미해지고 인간의 존엄은 보장받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개인에 대한 신상 털기 등 인신공격은 인간의 존엄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인간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이다.

인간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나라 민법규정을 보면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권리의무의 주체라고 한다. 인간의 생명이 전제가 돼야,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헌법에 규정돼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은 생명권을 포함하고 있다. 인간에게 생명은 하나뿐인 소중한 것이다. 그렇지만 생명이 하나의 권리로 보장될 때에는 공동체 내에서 상대화되어 평가의 대상이 된다. 장기이식은 또 다른 생명을 구하기 위한 방법이다. 생명권을 절대적 권리로 보면 장기이식은 불법이 된다. 그런데 장기이식은 육체적 생명이 있을 때 해야 하기 때문에 생명권을 상대화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헌법은 국가에게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국가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국가에게 기본권보장의무를 지우는 것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어떻게 책무를 수행해야 최선인지 여부는 국민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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