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티아(1)

김광규(1941~  )
 

아마도 오십은 넘었을 나이
점퍼를 걸친 사내와 일 바지를 입은 아낙네
저수지 물가의 느티나무 아래 앉아서
저녁노을 바라본다
이미 오래 함께 살아온
그들의 뒷모습
아무 말 없이
정물처럼 그 자리에 머물다가
차츰 흐려지면서 마침내
어둠이 되어 버릴 때까지
아쉬운 잔영을 길게 남긴다
 

[시평]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중년의 부부는 저수지 물가 느티나무 아래 앉아 하루의 고단함을 잠시 쉰다. 멀리 저수지 너머 스러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또 어둠의 빛으로 차츰 물들어 가는 저수지의 물빛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며.

이제 오십은 넘었을 듯한, 막 초로(初老)에 들어서고 있는 점퍼를 걸친 사내와 일 바지를 입은 아낙네. 이미 오랫동안 이러한 삶을 살아온 이들, 그래서 이제는 일상의 일과가 되어버린 그런 하루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예와 같이, 그 자리에 앉아 잠시 쉬며 저수지의 물을 바라보는 이들의 뒷모습에서는 ‘파르티아’, 고대 중동 이란의 유목민들 모습이 보인다. 한때는 실크로드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파르티아, 그러나 아무러한 기록을 남기지 않아, 그 역사가 사람들로부터 잊힌 나라, ‘파르티아’.

‘파르티아’, 그렇다. 대부분의 한 생애라는 것이 그러리라. 오십년, 육십년, 아니 칠십년 그 이상을 살아가도, 살아가며 세상의 온갖 일들을 다 하며 살아가는 듯해도, 결국은 어느 날 문득 정물처럼 그 자리에 머물다가, 차츰 흐려지면서 마침내 어둠이 되고 마는 초로(初老)의 저 농부 부부마냥, 그렇게 우리 모두 어둠에 묻히며,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 아니겠는가. 다만 아쉬운 잔영(殘影)만이 이 지상 어딘가에 쓸쓸히 남겨두고.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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