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강대국으로 굴기(崛起)한 중국의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 언행도 달라졌다. 천안함 사태에 대응하는 한미연합 군사훈련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날카로웠다. 언행도 거칠고 얼굴 표정은 험악했다.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신문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얼마 전 사설에서 ‘지금의 중국은 1백 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라고 했다. 맞다. 확실히 강대국으로 우뚝 선 지금의 중국은 서구 열강에 휘둘리던 그때의 중국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개혁 개방을 시작하던 30년 전의 중국도, 불과 몇 년 전의 중국도 아니다. 환구시보는 ‘미국이 중국을 1백 년 전과 같이 생각한다면 최대의 무지’라면서 ‘중국은 약소국이 아니며 미국의 군사적 도전에 맞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기염을 토했다.

물론 이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한미연합 군사훈련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되풀이해 냈다. 실제로 그들은 말로만 떠든 것이 아니라 서해에 인접한 중국 내륙과 서해, 동중국해, 남중국해에서 미국에 분명한 ‘힘의 메시지’를 전하는 대규모 대응 군사훈련을 벌였다.

중국 연안에 미치는 미국의 군사력 투사(投射)에 불쾌해하는 기분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천안함 사태에 격앙된 한국이나 동맹국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부족한 과잉 반응이었다.

인민일보는 최근 종소리(鐘聲)라는 지면을 통해 이렇게 달라진 중국의 진면목을 더욱 도발적인 표현으로 집약했다. ‘중국이 대국(大國)으로서 국제무대에 등장하는데 미국은 제대로 준비됐느냐’라고 추궁하고 있다.

이 글은 이어 ‘미국이 여러 차례 중국이 대국으로 등장하길 환영한다고 했지만 한미연합 군사훈련과 남중국해 관련 미국의 행동을 보면 미국이 정말 준비됐는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중국의 부상(浮上)을 받아들일 방법을 찾지 못하면 세계가, 특히 동아시아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고 경고했다.

그동안 중국 언론이나 당국자들은 한국에 대해서도 위압적이고 주권 침해적인 언동을 서슴치 않았다. 중국은 이렇게 무섭게 변했다. 이제 중국은 ‘칼날의 빛(또는 재주)은 감추고 은밀히 힘을 기른다’고 하는 지난 80년대 덩샤오핑(鄧小平)의 외교 책략인 도광양회(韜光養晦)의 베일(Veil)을 뒤집어쓰고 있는 중국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벗어 던졌다.

뿐만 아니라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목표를 이룬 마당에 90년대 들어 후진타오(胡錦濤)가 제시한 ‘평화롭게 강대국으로 일어선다’는 화평굴기(和平崛起)의 책략도 더는 그들의 금과옥조가 아니다. 그들의 국력과 군사력은 이미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중국의 국내외 정세가 지금의 형세대로만 간다면 앞으로 얼마든지 더 부풀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이를 외교 책략의 가면으로 가린다고 가려지지도 않겠지만 우리에게 불행을 안긴 천안 함 사태가 역사적이고 결정적인 계기가 돼 그들은 거추장스럽던 가면을 확실히 벗어 던졌다.

가면을 벗은 중국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무력시위의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험악한 표정과 말, 은밀히 길러 불끈 솟아 오른 힘으로 가로막고 나섰다. 한미 군사훈련이 도발자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인과관계가 명백한 설명을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북한을 등 뒤에 숨겨 감싸면서 군사훈련이 자기들을 압박하는 것이라며 북한을 향한 무력시위의 지향점을 흐트러뜨렸다. 자국의 안보 이익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항공모함의 서해 진입을 막고 미국과 정면으로 맞섰다. 이렇게 무섭게 변해 가는 중국은 또 앞으로 어떤 책략을 들고 나올 것이며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는 이렇게 우리와 동맹인 미국과 그런 미국을 멀리 아시아 밖으로 밀어내려는 새롭게 굴기한 신흥 강대국 중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이것이 두 강대국이 일으키는 고래싸움의 와류(渦流) 속에서 우리가 흔들림 없이 주권과 영토를 지켜내기 위해 호락호락하지 않는 강국(强國)으로 우뚝 서는 데 온 힘을 모아야 하는 까닭이다.

절체절명의 과제다. 우리가 강해져야 동맹도 유지되며 시너지(Sinergy)가 생기고 강화된다. 천안함 사태와 같이 우리 안보에 결정적일 때 싸늘한, 아직 먼 중국과도 관계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중국처럼 벗어 던질 가면은 없지만 벗어 던질 것이 있다면 부질없는 정치갈등, 이념갈등,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다. 빨리 털어 버리고 새 각오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중국에 말한다. 천안함 사태 같은 도발행동을 못 하게 하는 것이 강대국의 책임이며 그것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켜내는 일이다. 도발행동은 놓아두고 그에 대한 대응 조치만을 시비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한국에 위압적이며 주권침해적인 언동을 삼가라. 한강 고수부지에서 서울시민과 소탈하게 어울려 야구하던, 가까이 하고 싶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보여주는 온화하고 안정감 있는 이미지의 중국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면 우리도 세계도 중국에 대한 경계를 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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