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독재·폭압에 굴하지 않은 ‘학생·시민·정의’의 승리
[4.19혁명] 독재·폭압에 굴하지 않은 ‘학생·시민·정의’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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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시민으로 이뤄진 시위대는 1960년 4월 19일 화요일 “부정선거 다시 하라” “독재 정권 물러가라”를 외치며 서울시내 곳곳을 누볐다. 사진은 당시 시위 모습. (제공: 4.19혁명기념도서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9
학생과 시민으로 이뤄진 시위대는 1960년 4월 19일 화요일 “부정선거 다시 하라” “독재 정권 물러가라”를 외치며 서울시내 곳곳을 누볐다. 사진은 당시 시위 모습. (제공: 4.19혁명기념도서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9

‘마산의거’ 3.15부정선거 규탄

김주열 사망에 학생·시민 봉기

한달 만에 독재정권 무너뜨려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독재 정권의 탄압에 맞서 시민과 학생들이 주축이 돼 일으켰던 4.19혁명이 올해로 58주년을 맞았다. 폭력 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마침내 민주주의의 승리를 보여준 4.19혁명의 배경과 진행과정, 결과를 살펴봤다.

4.19혁명은 3.15부정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던 마산3.15의거에 참여한 김주열 학생이 마산 앞바다에서 시체로 발견되면서 전국적으로 격화된 혁명이다.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정권은 4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되자 12년간 계속된 장기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선거 조작을 계획했다. 자유당은 이기붕 후보를 부통령에 당선시키고 당시 85세의 이승만 대통령이 사망하면 모든 권력을 물려받을 수 있게 하려고 공무원을 총동원해 ‘선거운동망’을 조직하고 온갖 부정을 저질렀다.

▲4할(40%) 사전투표·투표함 바꿔치기 ▲유권자 명부 조작 및 대리투표 ▲득표수 조작 및 3인조, 5인조 공개투표 ▲야당 참관인 축출 ▲자유당 완장부대와 폭력조직을 동원해 유권자 위협 등이 대표적인 부정이었다.

3.15부정선거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다. 특히 마산시민과 학생들은 이날 오후 부정 선거를 폭로하고 선거 무효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에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총을 쏘며 이들을 강제로 해산시키려 했다. 이 과정에서 10여명이 사망하고 87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자유당 정권은 이 시위를 공산당 지하조직에 의한 폭동으로 몰고 갔다.

하지만 1960년 4월 11일 마산 시위 중 실종된 16세 고(故)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자 분노한 시민들은 경찰의 만행과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마산에서 2차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마산에서 멈추지 않았다. 3000여명의 고려대 학생들은 1960년 4월 18일 “마산 사건의 책임자를 즉각 처단하라”는 선언문을 낭독 후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시위 후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학생들은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아 2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고려대 학생들의 피습 소식을 접한 수많은 대학생과 시민들은 1960년 4월 19일 화요일 “부정선거 다시 하라” “독재 정권 물러가라”를 외치며 서울시내 곳곳을 누볐다. 시위대는 10만여명이 넘었고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를 향했다. 시위대가 경무대 앞에 이르자 경찰이 총을 쏘기 시작해 21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정부의 강경 대응에도 시위는 인천, 수원, 부산, 광주 등 전국으로 확산했고 이승만 정권은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날 시위로 인해 전국적으로 시위대와 경찰 등 115명이 사망하고 72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 결과 국무위원과 부통령이 사표를 냈고, 이기붕 부통령 당선자는 사퇴를 고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당 총재직만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이승만 정권의 미온적인 태도에 국민은 다시 분노했다. 전국 27개 대학 교수단 258명은 4월 25일 서울 종로에서 시위를 했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국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학생 시위는 정의감과 민족정기의 발로이며,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관 등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교수단의 시위는 끝났으나 학생과 시민의 시위는 밤새 계속됐다.

시위대는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정권의 퇴진을 더욱 강력하게 요구했다. 결국 국회는 ‘대통령의 즉각 하야, 정·부통령 재선거, 내각 책임제 개헌’ 등을 결의했다. 이어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고 자유당 정권도 무너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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