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나본 박물관] “의여차~ 올해는 평안이냐, 풍년이냐”…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이달에 만나본 박물관] “의여차~ 올해는 평안이냐, 풍년이냐”…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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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록된다. 남겨진 유물은 그 당시 상황을 말해 주며 후대에 전해진다. 역사는 미래를 바라볼 때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같은 역사적 기록과 유물을 보관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장소가 박물관이다. 이와 관련, `이달에 만나본 박물관' 연재 기사를 통해 박물관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지난 12~15일 2018 기지시줄다리기 축제가 열린 가운데 15일 오후 줄 시연장에 들어선 큰줄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8
지난 12~15일 2018 기지시줄다리기 축제가 열린 가운데 15일 오후 줄 시연장에 들어선 큰줄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8

매년 독특한 줄꼬기 선보여
500년 전통, 보존·전승에 앞장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의여차~.” 구령 소리에 한 발짝 한발 짝, 꿈쩍도 안 하던 거대한 줄이 조금씩 움직였다. 앞뒤로 나란히 따라오던 두 줄이 비녀장으로 결합하니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윗마을이 이기면 나라가 평안, 아랫마을이 이기면 풍년이 드니 어느 쪽이 이겨도 좋은 줄다리기다.

지난 4월 12~15일에는 충청남도 당진에서 2018기지시줄다리기 민속 축제가 열렸다. 5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기지시줄다리기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75호다. 옛 선조들의 화합·소통의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은 이에 대한 역사를 알리고 보존·전승하기 위해 기여하고 있다. 이곳은 국내 유일의 줄다리기 박물관이다.

◆교통의 통로, 기지시

역사적으로 보면 충남 당진군 송악읍은 서해안 연안에 위치하며 주민들이 농업과 어업에 종사했다. 특히 좋은 조건을 갖춘 쌀 생산지였다. 기지시리는 송악읍에 속하는 자연 촌락으로 틀모시, 틀무시라고도 불렀다. 기(機)는 ‘틀’, 지(地)는 ‘못’, 시(市)는 ‘시장’이라는 뜻이 있다.

기지시는 당진 일대의 물산이 모여드는 곳으로 육상교통이 발달하기 전, 아산만과 삽교천 주변에는 곳곳에 포구가 위치해 있어 한강까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이러한 기지시는 한양으로 직통하는 도로 한가운데 위치해 많은 사람이 왕래했고 시장은 금세 번성했다.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에 재현해 놓은 기지시의 옛 풍경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8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에 재현해 놓은 기지시의 옛 풍경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8

 ◆기지시장과 줄난장

기지시장에 대한 최초 기록은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예규지’ ‘ 팔역시장’ 등에 나온다. 이곳에는 전국 1052개의 시장이 제시되고 있는데 면천군의 기지시장은 면천읍내에서 북쪽으로 20리 승선면에 있고 장은 1일, 6일과 3일, 8일에 섰다고 기록돼 있다. 장터에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조선 후기에는 난장(亂場, 일정한 장날 이외에 임시로 특별히 터 놓은장)을 벌였다. 기지시장의 행사는 인근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줄다리기였다.

매년 약 200m, 지름 1m, 무게 40톤(t)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줄을 제작하고, 인근 마을을 물 아래와 물 위로 나눠 줄을 당겼다. 그래서 ‘줄다리기를 하는 난장’이라 하여 ‘줄 난장’이라고 불렀다.

기지시줄다리기 예능보유자 구자동 선생은 “농사짓는 사람은 볏짚을 대주고, 상인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서 줄다리기 행사 비용을 냈다”며 “‘줄 난장 한 번 하면 3년은 먹을 게 나온다’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설명했다.

기지시줄다리기만이 갖는 특성은 무엇일까. 첫째는 다른 줄다리기는 농업에 배경을 두고 있지만, 기지시줄다리기는 농업과 시장이 결부됐다는 점이다.

큰줄 제작을 하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8
큰줄 제작을 하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8

둘째는 독특한 줄 꼬기 방식이다. 기지시줄다리기는 매년 음력 2월 1일부터 잔줄 제작을 시작하며 3월 초순(양력 4월초)에 큰 줄인 암줄과 숫줄이 완성된다.

고대영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세 개의 중줄을 ‘사치미’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마치 머리를 따듯 꼬아 큰줄인 암줄과 숫줄을 만든다”고 말했다.

줄다리기를 하는 당일에는 줄 제작장에서 줄 시연장으로 두 줄이 옮겨진다. 이때 ‘의여차’라고 구호를 외치는 데,‘의롭게 가고 또 가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시연장에서는 암줄의 줄머리에 숫줄의 진입시킨 후 그 사이로 비녀장(비녀목)을 결합시킨다. 이는 음양의 결합을 통해 천지만물의 생성의 근원이 이뤄진 것을 의미한다. 탐실한 열매를 맺고 풍년이 들게 해 달라는 뜻도 담겨 있다.

세 번째는 약 500년 전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줄다리기가 생겨났다는 설화가 남아 있다.

암술과 숫줄을 연결한 비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8
암술과 숫줄을 연결한 비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8

◆도시화로 찾아온 위기

기시지줄다리기는 사라질 뻔한 적이 있었다. 과거 우리나라는 줄다리기가 전국적으로 널리 진행됐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점으로 6.25전쟁, 산업화·도시화를 거치면서 줄다리기는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고 학예연구사는 “줄다리기는 농업사회 구조에 맞춰진 민속놀이여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며칠씩 작업해야 한다”며 “하지만 도시화·산업화되면서 정월대보름 관련 민속문화가 줄면서 줄다리기는 하나둘씩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지시줄다리기도 1960~1970년대에 줄다리기가 일종의 미신이고 산업화로 인해 더 이상 하지 말자는 내부적 주장이 있었지만, 뜻이 있는 몇몇 분이 500년의 전통을 지켜야한다고 말해 보존회가 생기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오늘날에는 줄다리기가 화합과 단결을 촉구한다고 해 몇몇 지역에서 다시 생겨나고 있는 추세다.

지난 15일 당진 기지시줄다리기 행사에 온 참석자들(제공:당진시)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8
지난 15일 당진 기지시줄다리기 행사에 온 참석자들(제공:당진시)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8

◆줄, 상대방을 끌어들이다

이 같은 줄은 인류와 늘 함께해 왔던 존재이기도 했다. 고 학예연구사는 “인류가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줄’이었다. 그러다보니 줄다리기도 쉽게 할 수 있었다”며 “다른 경기는 상대방을 밀치거나 쓰러뜨려야 이기지만, 줄다리기는 상대방을 내 쪽으로 끌어들여 이기는 경기”라고 말했다.

특히 상대편과 내가 같은 줄로 연결돼 있고 서로 마주 보고 있다는 것은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구자동 선생은 “줄다리기의 본래 정신은 화합과 단결”이라며 “정치권은 물론이고 세대 간의 갈등을 없애고 하나로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물관을 통해 기지시줄다리기를 알리고 전승에도 앞장 서겠다”며“남북 화합 줄다리기도 이뤄질 수 있게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당진 기지시줄다리기 마스코트 `줄동이’와 `말동이’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8
당진 기지시줄다리기 마스코트 `줄동이’와 `말동이’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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