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당신의 부탁’ 임수정. (제공: 명필름·CGV아트하우스)
영화 ‘당신의 부탁’ 임수정. (제공: 명필름·CGV아트하우스)

 

다양한 장르, 한국 영화의 힘… 수준 높아

개성있는 소재가 시장 더 풍성하게 해

`엄마'가 된 친구들 보며 역할 결심

남편의 아들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역할

엄마라는 이름의 다양한 이야기 담은 영화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하얀 얼굴에 큰 눈, 동그란 코 등 임수정의 동안 얼굴은 그대로지만 연기력은 날로 깊어졌다. 영화 ‘당신의 부탁(감독 이동은)’에서 ‘효진’으로 분한 임수정은 처음으로 엄마 역할을 맡아 전형성을 깨부수는 연기를 선보인다. 32살 효진은 사고로 남편을 잃고 작은 학원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이다. 그는 죽은 남편이 남기고 간 16살 아들 ‘종욱’을 갑자기 떠맡게 된 복잡 미묘한 심정을 독보적이고 섬세한 감성으로 표현한다. 지난 11일 서울시 중구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당신의 부탁’의 주연 배우 임수정과 인터뷰가 진행됐다.

“몇 년 전부터 나에게 엄마 역할이 들어온다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제 주변의 친한 친구들이 이미 가정을 이루고 아이의 엄마가 됐으니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죠.”

임수정은 데뷔 후 첫 엄마 역할을 맡은 소회를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번이 첫 엄마역이긴 하지만 실제로 낳은 게 아니고 남편의 다 큰 아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역할”이라며 “진짜로 낳은 아이와의 관계를 그린 역할이 들어오면 직접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너무 어려울 것 같다”고 털어놨다.

“물론 배우는 연기를 해내야 하지만 거짓으로 연기할 수 없잖아요. 이번에는 엄마라는 타이틀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보니까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의 말처럼 갑자기 가족이 된 두 사람은 통과의례와도 같은 애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관계의 변화를 겪게 된다. 임수정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쉽지 않은 관계들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의 감정을 능숙하고 안정적으로 연기해나간다.

영화 ‘당신의 부탁’ 임수정. (제공: 명필름·CGV아트하우스)
영화 ‘당신의 부탁’ 임수정. (제공: 명필름·CGV아트하우스)

 

아무리 사랑하는 남자의 아들이지만 32살의 여자가 16살의 아들을 키운다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에 대해 임수정은 “효진은 처음부터 종욱이를 아들로 생각하진 않았으며, 종욱이 자신을 엄마로 생각해주길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며 “종욱이라는 아이를 아무도 돌봐줄 어른이 없기에 약간 연민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도 혼잔데 쟤도 혼자구나’하는 효진의 우울한 심리적인 상태도 충동적인 선택을 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며 “2년이나 지났지만 남편의 죽음이 효진에겐 여전히 트라우마였고, 남편의 아들인 종욱이와 같이 살다 보니까 가까워지고 마음이 열린다. 어쩌면 떠난 사람을 보내는 과정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모와 조카 사이 같은 엄마와 아들. 임수정은 종욱과의 관계를 통해 현실적인 법적 모자 관계를 그린다. 그는 “아들과 효진에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감독님의 취향·성향인 것 같다. 캐릭터와 감정의 과잉이 없다. 그런 점이 저의 성향과 맞았던 것 같다”며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 때 전체적으로 흐르는 결이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적으로 흔히 쓸법한 대사가 많아서 감독님이 궁금했다. 이후 만났는데 이번이 첫 작업이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되게 잘 맞았다”고 회상했다.

“다른 영화였다면 효진의 입장을 더 파고들었겠죠. 하지만 이 영화는 종욱이와 주변의 많은 엄마를 이야기해요.”

영화 ‘당신의 부탁’ 임수정. (제공: 명필름·CGV아트하우스)
영화 ‘당신의 부탁’ 임수정. (제공: 명필름·CGV아트하우스)

영화는 가족, 구체적으로 엄마에 관한 이야기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엄마를 떠올리거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임수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다. 실제 엄마랑 사이가 좋은 편이지만 엄마한테는 왠지 하지 말아야 할 상처 되는 말도 스스럼없이 한다”며 “제 엄마로 나오신 오미연 선생님께 ‘저도 이렇게 한다’고 고백했다”고 말하며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선생님은 ‘그게 딸이지 뭐’ 하면서 진짜 엄마처럼 받아주셨다. 저희 엄마가 보시면 아마 평소 저랑 똑같다고 하실 것”이라며 “제가 앞으로 어떤 엄마가 될지는 모르겠다. 직접 낳아봐야 알 것 같다. 그래도 자식과 가정을 위해 애쓰고 희생하고 헌신하신 저희 엄마만큼 해내진 못할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 그는 영화 ‘더 테이블’에 출연하고, 영화 소개하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등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이처럼 활발한 활동을 시작한 건 여러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면서부터다.

임수정은 “몇년 전부터 크고 작은 한국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진지하게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준이 매우 높고 훌륭하더라”며 “감독부터 배우, 스태프까지 인재들이 많고, 소재도 다 좋았다. 이게 한국 영화의 힘이고, 개성 있는 영화들을 대중들이 본다면 영화시장이 더 풍성해질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신의 부탁’에 참여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는 “저도 제안 들어오는 흥미롭고 좋은 작품을 하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까 포기하게 되는 건 돈”이라며 “저예산 영화라 상업영화에 출현해서 받는 돈보다 현저히 액수가 적다.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행복했으니까 ‘이런 돈 따위’”라며 우는 시늉을 해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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